새벽 4시 화재경보

by Anna Lee

토요일 새벽이었다.

갑자기 잠에서 깼는데, 어둠 속에 베란다 문을 내다보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뭐해?" 남편을 향해 말했지만,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나 보다 생각이 드는 순간, 그제야 사방에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귀를 찢는 듯한 화재 경보음이었다.

11년 동안 살았던 하우스를 팔고 아파트로 이사한 지 2년째, 그동안 우리 아파트 화재경보기는 총 여섯 번을 울어댔다.

그중 두 번은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소방 점검 때였다. 점검 사흘 전쯤 아파트 주민 모두에게 점검 시간과 방법, 요란한 알람 소리로 어린이나 반려동물이 놀라지 않게 미리 준비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이 온다. 소방 점검이 있는 날은 소방관들과 아파트 직원들이 건물 내의 시설을 정비하고, 가가호호 돌며 화재 알람이 제대로 울리는지 확인한다.

여섯 번 중 한 번은 비가 몹시 오던 날 빗물이 옥외 주차장의 경보기 전선을 건드려 울렸고, 한 번은 누군가 실수로 복도의 경보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나머지 두 번의 울림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일단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집 안에 있는 게 불가능하다. 경보기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기점검 외에 울릴 때는 건물 어딘가 화재가 발생한 것이니 밖으로 나가는 게 당연하다.

처음 화재경보가 갑자기 울렸을 땐 정말 무서웠다. 경보기의 차갑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주는 공포도 화재의 공포 못지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사람들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오고 나서 보니, 내 몰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오직 살기 위해 집을 빠져나왔으니 오죽했을까.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밖에 나온 사람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속으로 쓴웃음을 웃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경보 알람이 울려도 그러려니 무서움이 반감되었다. 처음처럼 얼른 뛰어나가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나가나 안 나가나 보느라고 행동이 한 템포 늦어진다.

양치기 소년 같은 화재경보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 알람이 울려도 안 나가게 될까 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아직 캄캄한 어둠 속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적잖은 차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복도로 나가니 집에서보다 더 크게 울리는 경보기 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했다.

벌써 번쩍번쩍 소방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다. 여기 시카고의 겨울은 길다. 4월임에도 불구하고 주말 내내 비와 눈이 오락가락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다행히 연기나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쯤 지난 후 화재경보기의 울림은 멈췄고, 소방차들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늦게 잠드는 바람에 몇 시간 못 잤는데 그렇다고 홀랑 날아간 잠을 다시 잡아 오기는 쉽지 않았다. 멍해진 내가 말했다. "걔, 화재경보기 말이야, 툭하면 울리는 게 진짜 예민한가 봐. 누가 좀 꼭 껴안아 주면 괜찮아질 텐데..."

토요일 아침 아파트 측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번에도 누군가 실수로 복도의 경보 버튼을 눌러서 생긴 일이었다고 한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평상 시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화재경보기의 시끄러운 울림 속에서는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생각했었다.

새벽 4시에 화재 경보음을 듣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도 안 울리는 경보기보다는 울리는 경보기가 낫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화재경보기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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