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케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by Anna Lee

너도 나랑 같은 과구나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옆 좌석의 아기가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칭얼대기 시작했다.

이륙을 위해 천천히 활주로로 이동하는 동안 칭얼댐은 울음으로 바뀌었다. 비행기가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르자 아기는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울어댔다. 비행기 엔진 소리에 절대 묻히지 않는 울음소리는 주변의 평화를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아기를 짜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아기 아빠가 아기를 안고 통로를 왔다 갔다 한 잠깐을 빼고는, 아기는 네 시간 비행 거의 내내 울었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관찰해 보았는데,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잘 보살피고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아기를 달래며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노심초사일까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나도 낯선 곳에 가면 심기가 몹시 불편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많이 우는 아이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울음을 참다 보니 기분이 괜찮아지곤 했다. 아마도 자아 조절과 통제를 배우며 한 단계 성장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낯선 사람들이 꽉 찬 좁고 답답한 비행기가 아기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너도 나랑 같은 과구나' 하는 생각에 입 옆구리로 슬며시 웃음이 삐져나왔다.

아기의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울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아기의 긴 울음소리가 비행기 소음과 섞여 마치 귀에 달라붙는 것 같을 때쯤, 울음에 어느새 졸음이 가득 차는가 싶더니 아기가 까무룩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고요함은 고작 30분이었다.

내릴 때가 다 돼서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손을 흔드니까 방긋 웃는다. 주변 사람들과 몇 번 눈을 맞추고 그들의 다정함에 방긋대던 아기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울지 않았다. 긴 적응 시간을 거쳐 조금은 익숙해진 것이다. 그것도 나와 닮았다.

아기가 자신이 가진 성격을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장점으로 다듬어가며 잘 자라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녀의 정원


남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

북 캘리포니아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그는 남편과 십여 년 알고 지낸 동료이자 친구이다. 하얀 회벽과 아치형 창이 돋보이는 스페인 풍의 그의 집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의 와이프 자웨이는 초면인 나를 몹시 반겨 주며 집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집의 뒤편에는 특이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타원형 모양의 둥근 풀장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거의 모든 집은 하우스 풀을 갖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집집마다 파란 풀장이 보인다.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서 풀을 덮어놓지 않고 1년 내내 열어둔다고 한다. 자웨이는 아예 수영복을 입고 가드닝을 하다 더우면 풀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며 웃는다. 내가 살고 있는 중부와는 날씨도 분위기도 사뭇 달라서 신기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가꾸는 정원이었다. 100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앞뜰에는 꽃, 과일나무, 채소밭이 빼곡했다. 처음 보는 고운 색깔의 장미가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체리나무, 사과나무, 오렌지나무, 복숭아나무가 줄줄이 서 있었다. 담장 옆으로는 자그마한 밭이 있었는데 토마토를 비롯해 오이, 호박, 가지, 딸기, 상추, 감자까지 있었다. 딸기를 먹어보니 과즙이 풍부하고 달콤했다. 모두 그녀가 직접 가꾼다며 아이처럼 자랑스러워했다. 넓은 정원 한편 닭장에는 닭이 여섯 마리나 있었다. 신선한 달걀을 매일 다섯 개씩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녀의 스스럼없는 모습과 열정이 참 좋아 보였다. 잘 자라던 식물도 나한테만 오면 비실비실해지기 일쑤여서 가드닝은 아예 엄두도 못 내는 나에게 그녀의 정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리고 작은 생명을 보살피고 가꾸어 내는 모습에서 그녀의 건강한 삶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건강함과 순수함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밭에서 딴 채소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돌보고 키우는 농부의 마음처럼 푸근한 식탁이었다.



사람의 마음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한 명이 눈에 통증을 호소하며 상체를 꺾어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륙하고 30분 만의 일이었다.

승무원들이 달려와 산소를 공급해 주고 얼음도 주었다. 기내에 의사가 있으면 도와 달라는 안내 방송도 나왔다. 잠시 후 다행히 의사가 와서 그녀의 상태를 첵업하고 남은 두 시간 반 동안의 비행 중에는 별 일 없이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환자는 승무원이 갖다 준 얼음으로 찜질을 하며 안정을 찾았고, 승무원들은 수시로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필요하면 착륙 직후 앰뷸런스가 오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통증을 거두어가 주시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서 기도가 생겨났다. 그녀가 흔들리는 비행기 안 비좁은 좌석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녀와 그녀 가족의 복장으로 보아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몹시 고통스러워하던 그 순간에 그들이 나와 다른 신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고 기도로 이어졌을 뿐이다.

잠시 후 음료수를 서빙하는 승무원에게 내 앞의 한 중년 여성이 환자가 좀 어떠냐고 물었고, 승무원은 괜찮다며 물어봐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비행기 안의 모든 승객이 한 마음으로 환자를 걱정하고 그녀를 위해 기도했을지 모른다.

위기에 처했을 때 모아지는 마음, 약한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선한 것을 이루려는 마음이 신이 우리에게 준 진짜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지키고 싶다. 그 어떤 것에도 가려지지 않는 인간성을 간직하고 또 발견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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