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힘

by Anna Lee

"어멋~!"

감탄사와 함께 언제나처럼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언니. 다시 1년 만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팬데믹 원년에 우리는 미용실 가기도 겁이 났었다. 점점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손으로 하는 것 치고 자신 있는 게 별로 없던 나는 어느새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기 시작했고, 남편은 내 머리를 잘라주었다. 동영상을 보고 대충 쓱싹쓱싹 자른 머리는 다행히 그도 나도 곱슬머리라 삐뚤빼뚤한 게 적당히 감춰졌다.

도시가 락 다운되고 일도 집에서 하게 되자 점점 미용실에 안 가게 되었다. 머리 모양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남편과 내가 2년 만에 더벅머리가 되어 나타났던 작년, 우리를 보고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미용실 문을 열고 우리 네 사람이 들어서자 들고 있던 가위를 팽개치고 달려 나오는 언니. 하나도 안 변했다.

"언니는 어쩜 하나도 안 늙어요? 피부가 팽팽해."

"수분 크림을 잔뜩... "

"아, 글쎄 난 안 되더라니까. 언니 말 듣고 아무리 수분 크림 범벅을 해봐도 늙어. 언니만 안 늙는 비결이 뭐야, 대체. 혼자만 몰래 뭐 하지? 그치그치?"

언니가 미용실 두 개를 거느린 대표라는 것도, 내 뒤에 나머지 세 사람이 멀뚱멀뚱 서 있다는 것도 다 잊은 채 수다가 시작된다. 40년의 힘이다.


언니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엄마를 따라 동네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면 거기 언니가 있었다. 그때 언니는 손님들에게 미스 유라고 불리던 미용실 막내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에 가는 사이, 언니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 실장님이 되었다. 조그만 동네 미용실이 제법 규모가 큰 대학가의 미용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길 건너에 분점도 생겼다.

결혼식 날 신부 화장을 한 곳도 언니가 일하는 미용실이었다. 주위에서 다른 유명 미용실을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를 잘 아는 곳이 편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다른 미용실에 가 대충 머리 손질을 할 때도 있었지만, 집안 행사가 있거나 한 번씩 '머리 총정리' 욕구가 느껴질 땐 어김없이 유 언니를 찾아가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세월은 함께 흘렀다.

나라밖에 나가 살게 되면서 한동안 유 언니한테 가지 못했었다. 그동안 언니의 어린 자녀들이 성장해 남매가 모두 미용사가 되었다.

지금 언니는 미용실 대표로, 언니가 임신했을 때부터 보았던 언니의 딸은 원장으로, 그리고 아들은 실장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나는 미용실에 잘 가지 않고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다가 유 언니에게 가 한방에 머리를 해결한다. 고향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머리를 만지고 유 언니를 만나는 일이 되었다.

예약 전화를 하면 단 한 번도 '노'하는 법 없이 바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다른 손님에게 지장을 주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 가족의 머리를 해결해 준다. 40년 단골이 누리는 '빽'인 듯하다.

이젠 환갑이 넘은 언니가 직접 내 손에 팩을 해주고 뒷목 마사지를 해준다. 언니의 손길을 느끼며 옛날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머리를 감기느라 얼굴에 덮어놓은 수건이 눈물을 가려주어 다행이었다.


40년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일해 온 유 언니. 내가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돌아와 그곳에 가면 늘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반겨 주었다. 미용실 직원과 손님으로 만난 우리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 40년의 힘이다.

문 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언니의 팽팽하기만 한 줄 알았던 눈가 주름이 햇빛 아래 드러난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그 정직한 세월 속에 언니와 나의 시간들도 함께 녹아있다.

오랜 벗은 잊혔던 자신의 모습을 서로가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언니가 거기 있음에 나는 늘 감동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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