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 때 친구들과 만났다.
나를 포함 일곱 명 1년 만의 완전체다. 30여 년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작은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그들의 외모다.
그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학교 때 모습 그대로다. 목소리, 미소, 심지어 글씨체까지 하나도 안 변한다.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에게 '옛날 그대로'라며 감탄하는 걸 보면, 그럴 리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본다면 그 역시 그럴 리 없다고 느낄지 모른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마치 우리들만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다른 기적 하나는 이야깃거리다. 언제 만나도 쭈뼛거림 없이 바로 시작된 이야기는 만남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만남이 끝나야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마무리돼야 만남도 끝난다.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이처럼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 속에 빠지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온 1년의 시간들이 오히려 무색해진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게 있는가 하면 드물게 변하는 것도 있다.
친구들 중 H는 언제나 우리 모임의 대장 역할을 한다. 앞장서서 친구들의 안부를 챙기고 모임 날짜와 장소 정하기를 리드하며 온갖 예약을 척척 잘도 해낸다.
H의 큰 아들이 내가 사는 곳 가까운 학교에서 유학하게 되면서 우리 사이엔 자연스레 공통의 화제가 많이 생겼다. H와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늘어나자, 나는 H가 어느새 나와 비슷한 성향으로 기울어 있음을 느꼈다. 아마도 나 또한 어딘가 H와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되면서 우린 전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서로에게서 발견하게 되었으리라.
헤어질 때 꼭 다음 만남을 정해야 안심이 되는 우리. 그날도 다음 만날 날을 정하고서야 아쉽게 헤어졌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 그 말뜻에 딱 들어맞는 그들. 태어나 내 친구가 돼줘서 모두 고맙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잊고 있던 열정이 가슴속에 다시 살아난다. 그들과 함께한 추억과 더불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빠이" 하고 돌아서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살면서 내 친구들의 등을 무겁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이미 서로의 슬픔을 등에 지고 살아왔음을.
그리고 나누어 지는 짐은 그리 무겁지 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