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다 못해 집을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네는 서울 한복판이다. 널따란 도로에서 굽이굽이 골목을 따라 들어오면 있는 2층 건물에 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동네와 가까워 주위가 매우 낯이 익다. 낯선 곳에 가면 불안해지는 나에겐 이 동네가 고향처럼 푸근하다. 집 앞을 나서면 만나는 좁은 골목 끝 어딘가에 예전 친구 집이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며칠 끙끙 앓았다.
감기에 걸리면 목부터 아프기 시작하는 나는 이번엔 기침만 해댔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오한과 열이 났다. 새벽엔 식은땀으로 등이 펑하게 젖은 채로 눈을 뜨곤 했다. 그렇게 젖었던 등은 낮엔 의자에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등과의 싸움 같았다.
감기도 떠나고 등 통증도 떠난 자리에 글이 써지지 않는 후유증이 남았다.
오래 닦지 않아 뿌연 내 방 유리창 밖 풍경은 먼지 앉아 색이 바랜 그림 같았다. 앓고 난 내 마음이 꼭 내 방 유리창 같다고 생각했다.
환기를 하려고 창을 여는데 문득 그 뿌연 유리창을 견딜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들고 집 앞 북카페로 왔다. 손님이 나밖에 없는 오후의 북카페. 작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는 밝고 아늑하다.
창 넓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앞에 놓고 랩탑을 열어본다. 맑은 창 너머에 오후의 고즈넉함이 가득하다.
그냥 쓰자. 그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숨을 크게 쉬고 자판에 손을 올려본다.
맨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미끄러지듯 첫 자음을 누른다.
그냥 쓰는 게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에, 나는 망설이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쓰자.
저만치 코너를 돌아 다시 돌아오고 있는 나의 일상이 비구름 속에 숨은 해를 보듯 반갑다.
안녕, 고마워, 나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