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이모

by Anna Lee

"아이고, 내가 늦었지? 이를 어째~"

이모가 들어서면 벌써 문 앞부터 왁자지껄이다. 이모는 단 한 번도 말없이 문을 통과하는 법이 없다. 어떤 문이든 말을 함과 동시에 문지방을 넘는다.

그날도 이모는 명동의 한 칼국수집 문을 열며 대화의 문도 동시에 열었다. 일흔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짱짱한 목소리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려도 이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괜찮아, 아직 약속 시간 전인데 뭐~" 허둥대는 이모를 안심시키지만 나는 안다, 이모는 언제나 약속 장소에 당신이 먼저 나와 있어야 마음 놓여한다는 것을.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고 대접받는 것보다 봉사하는 걸 더 좋아하는 이모는 나와 아이들이 먼저 나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편치 않은 것이다.


이모는 우리 아이들이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몇 년 전 이모할머니가 사주신 한 그릇 칼국수의 맛을 내내 잊지 못하던 둘째 아이의 소원대로, 우리는 비좁은 구석 자리에서 뜨끈한 칼국수와 속이 알찬 만두를 먹었다. 구수한 닭 육수와 마늘향 진한 김치가 아이들의 미소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우리를 주려고 바리바리 싸온 갖가지 먹거리 가득한 이모의 종이 가방은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별별 희한한 게 다 들어 있는 이모의 핸드백은 오늘도 꽉 차 있다. 휴대용 반짇고리부터 색색의 펜들과 메모지, 언제 어디서 쓰일지 모른다는 비닐봉지 한 묶음, 게다가 나랑 밥 먹고 별다방 갈 거면서 페트병에 아이스커피까지 타 가지고 나온다. 정말 못 말린다.

우리가 챙겨가지고 나간 이모와 이모부 선물도 생각보다 무거워 짐 부자가 된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이모 댁으로 가기로 했다.


인왕산 자락 공기 좋은 곳이 이모가 사는 동네다. 이모는 이 동네에 둥지를 틀고 수십 년을 살았다. 이모와 이모부가 부부 교사로 재직한 학교들도 같은 동네에 있다.

우리가 들어서니 에어컨을 트네 선풍기를 돌리네 커피를 타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이모. 나는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모오, 제발 그만! 아, 정신없어. 좀 앉으시라고요오~"

내가 산만한 게 이모를 닮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오면 보여주려고 고구마 싹도 틔우고 봉숭아도 키웠단다. 이모는 늘 이렇게 소소한 것들을 행복해한다. 그래서 나는 이모를 보면 언제나 살갑고 편하다.

고등학교 교사로 40년을 재직하고 정년 퇴임한 이모는 배우기에도 남다른 열정이 있다. 영어, 컴퓨터는 물론이고, 벌써 여러 해 전에는 부채춤을 배워 우리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이모의 부채춤에 홀딱 반해 그때부터 이모를 '부채춤 이모할머니'라고 부른다.


나에게 이모는 '빨간 이모'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이모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엔 이모의 이미지가 빨간색으로 남아있다. '빨갛다'는 건 어린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 멋진 것을 뜻했다. 이모가 실은 나와 같은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이모에겐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사랑으로 보살핀 많은 제자들과 딸들, 그리고 내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돼 주었던 이모의 내리사랑은 내 삶에서도 큰 힘으로 머물다 또 다른 사랑의 물꼬가 되어준다.

이모가 보여준 '빨간' 사랑에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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