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풍경이 하루가 다르다.
엊그제까지 초록빛인 듯하던 나무들이 어느새 가을색으로 변신을 마치고 시침을 떼고 있다. 그들의 변신이야말로 무죄다.
내가 사는 이곳 가을 하늘도 우리나라 하늘 못지않게 파랑이 짙다. 지독히 춥고 긴 겨울이 시작되기 전 요즘이 한 해 중 날씨가 가장 좋을 때다.
거리에 나서면 집집마다 핼러윈 장식이 눈에 띈다. 해골부터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까지 가지각색이다. 자기 집 앞뜰을 공동묘지로 꾸며놓은 집도 있다.
미국에 와 몇 번 안 되는 핼러윈이었다. 운전을 하다 기겁을 했다. 내 바로 앞 차 트렁크 문 사이로 피 묻은 작은 발이 삐져나와 있었던 것이다. 같이 타고 있던 아이들이 핼러윈 장식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로 경찰에 신고했을지 모른다.
핼러윈 장식과 함께 시작되는 이곳의 가을은 땡스기빙(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으로 끝이 난다. 11월 넷째 주인 땡스기빙 전부터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이 시작되며 사람들은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몇 해 전 데이케어 센터에서 현장학습(field trip)을 갔다. 나를 포함한 교사 일곱 명이 아이들을 인솔해 갔던 한 농장은 입구에서부터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트랙터에 연결된 커다란 건초용 카트에 마흔 명이 넘는 우리 모두가 함께 타고 핼러윈 장식 가득한 숲을 도는 Haunted Hayride를 했다. 어릴 때 가본 유령의 집에 다시 온 기분이었다. 덜컹덜컹 천천히 달리는 트럭과 아이들의 가짜 비명 소리가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너무도 즐거운 순간이었다.
농장 안 놀이공원에서 조별로 놀이기구 여섯 개씩을 탔다.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는 나는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끼리만 태울 수는 없었다. 장난꾸러기 라이언이 핸들을 세게 돌리는 바람에 호박 모양의 놀이기구가 더 빠르게 빙글빙글 돌았다. 내리고 나서도 한동안 맑은 하늘에 별이 보였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센터에서 싸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커다란 호박 하나씩을 선물로 받아왔다. Pumpkin Patch(호박농장 나들이)는 이곳 가을의 빠지지 않는 전통이다.
가져온 호박은 파낸 속으로 파이를 굽고 씨는 오븐에 구워 과자처럼 먹는다. 껍질만 남은 호박은 조각을 해서 핼러윈 장식에 보탠다. 우리 센터에서도 매년 호박 작품 경연대회를 열어 우승한 가족에게 푸짐한 상품을 주기도 했다.
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가을을 즐기던 때가 그립다.
어릴 때 가을은 내게 몇 가지 키워드를 던졌다. 천고마비, 독서, 단풍, 운동회 같은 단어들이 가을만 되면 학교에서 흔한 글감으로 쓰이곤 했다.
추석에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세뱃돈 없는 명절은 별로 영양가 없게 느껴지던 사춘기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내 눈에도 가을 하늘만은 뭔가 달라 보였다. 봄 하늘이나 여름 하늘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멀어진 하늘과 나의 거리가 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는 가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내 생일은 언제나 중간고사 기간에 끼어 있었다. 다가오는 생일에 대한 설렘보다 시험이 주는 압박감이 더 컸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이 같은 날이어서 엄마는 늘 불만이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에 힘든 출산을 해야 했고, 내 생일에 가려 온전한 축하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내 생일이 있는 가을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이때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가 오가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이 되면 이유 모를 쓸쓸함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차라리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가을 첫머리를 고향에서 지내며 언젠지 모르게 가을이 나와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별로 감흥 없던 이 계절이 왠지 정답게 다가왔다.
어느새 좋은 기억들이 쌓여서일까.
내가 태어난 이 계절을 비로소 눈여겨보게 된 게 나 자신과 화해해서일까.
짧지만 찬란한 빛이 가시기 전에 더 사랑해야겠다, 가을도 그리고 나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