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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02. 2024

민방위 훈련

오글오글 1

"애애애애앵"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우리 서울 거리에 퍼졌다.

교실에서 글짓기 공부를 하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은 별안간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책상 밑에 숨어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고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는 눈을 가렸다.

교실은 아주 조용해졌다. 다만 소리가 들린다면 아이들의 헛기침 소리뿐이다. 얼마동안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모두들 일어서요." 선생님의 말씀에 "휴우, 혼났다." 하는 소리를 내뿜으며 일어섰다.

이번에는 대피를 하였다. 왼손을 오른팔에 얹고 운동장에 나와보니 I 학교 오빠들이 빈 주전자나 양동이를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또, 사닥다리를 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연습도 하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I 학교 오빠들은 퍽 용감하고 씩씩하구나." 하고 말하였다.

그것을 듣고, 옆에 있던 지수가 말했다. "이렇게 고생하며 민방위 훈련을 안 하는 방법이 있단다. 무얼까 알아맞혀봐."

나는 "글쎄..." 하고 말하였다.

"바로 적군을 물리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이런 민방위 훈련 같은 건 필요가 없잖아."

나는 지수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맞아, 지수 말이 맞아. 지수가 옳은 말을 한 거야.' 한참 생각하던 중, 나는 이렇게 판단하게 되었다.

지난 국군의 날, 나는 우리나라 국군이 힘차게 행진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 국군의 용감하고 씩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군에 비하면 적군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국군 아저씨들이 어서 적군을 물리쳐 주었으면...' 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몇 달 전 이삿짐을 정리하다 신문 스크랩 하나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탄 글이었는데, 여태까지 받아본 상 중에서 꽤 큰 편이라 고이 간직했던 것 같다.

글을 쓰던 그날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 몇 명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글을 썼다. 몇 가지 주어진 제목들에서 골라 글을 쓰던 일, 기다란 종이가 원고지처럼 네모칸으로 돼있어 띄어쓰기에 무척 신경 쓰던 일, 다 쓰고 나서 주제가 어려운 것뿐이었다며 친구와 푸념하던 일도 떠오른다.

그날 내가 참가한 대회는 유명 신문사 주최 글짓기 대회였고 내가 탄 상은 1등인 최고상이었다. 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에 가서 커다란 트로피와 상장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내겐 지난날 썼던 글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학시절부터 글쓰기와 담을 쌓고 살았고, 어릴 때 쓴 글이나 간간이 썼던 일기조차도 모두 없애버리곤 했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이 글이 내겐 희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에 쓰려는 '오글오글 2'와 함께, 이 글 역시 손발이 몽땅 오글거리긴 마찬가지다. 글솜씨가 뛰어나서라기 보다 아마 그 시대가 원하는 글을 썼기에 상을 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결과 긴장으로 꽝꽝 얼어붙었던 냉전시대, 미술시간에 불조심 포스터와 함께 허구한 날 그리던 반공방첩 포스터, 공공장소에 흔하디 흔했던 각종 표어들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 시절 나라 안팎 분위기가 꼬맹이였던 우리에게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할만하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우리의 운명에 대한 자각이 이미 그 무렵부터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었을 것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가던 길을 멈춰야 했던 민방위 날들이 떠오른다. 1970-80년대 민방위 훈련은 매달 15일 오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시간 나는 대부분 학교에 있었지만, 어른들로부터 "오다가 민방위에 걸려서..."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수업시간에 사이렌이 울리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거나 복도에 나가 줄 맞춰 앉아있어야 했던 일, 정말로 전쟁이 났을 때 이렇게만 하면 살 수 있는 걸까 궁금하던 일, 그리고 훈련 덕분에 잠깐이라도 공부를 안 할 수 있어 신나던 일 등도 생각난다. 그뿐이 아니었다. 야간 등화관제 훈련 때는 집 안의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끄고 숨죽여 있어야 했다. 몰래 TV를 보거나 촛불을 켜놔도 안 됐다. 우리 집은 아파트여서 경비 아저씨가 불빛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집 호수를 온 아파트가 떠나가라 크게 외치는 바람에, 어쩌다 친구 집 호수가 불리면 킥킥대던 생각도 난다.


별로 예쁜 글은 아니지만, 그 시절 나를 만난 것 같아서 옮겨 적어본다. 글을 쓸 때의 사뭇 진지했던 마음 또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 Ann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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