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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29. 2024

동화나라

New York New York 16

맨해튼 첼시에 있는 북스 오브 원더(Books of Wonder) 서점에 갔다. 북스 오브 원더는 뉴욕 최대의 아동도서 전문서점이다.

쇼윈도에 'Honoring Black History Month(흑인 역사의 달을 기리며)'라고 쓰여있다. 2월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나라에 공헌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흑인 역사의 달이며, 1976년 공식 제정되었다.


예쁜 동화책은 물론이고 여러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지난가을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북스 오브 원더는 1980년 처음 문을 열었다. 피터 글래스만과 그의 동료 제임스 캐리가 오픈한 서점은 손수 만든 책장으로 채워진 작고 허름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아동용 고서들만 취급하려 했으나, 책장을 채울 만큼 고서가 넉넉지 않자 곧 신간 아동도서도 들여왔다고 한다.

지금은 세분화된 다양한 섹션이 있어 책을 찾아보기에 매우 편리하다.


서점의 맨 안쪽 벽면 거의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유리장 안에는 어린이책 고서와 희귀본이 가득했다.

특히, 북스 오브 원더는 하퍼콜린스 출판사와 협업하여 프랭크 바움의 <오즈(Oz)> 시리즈 열네 권을 원본의 컬러 일러스트레이션 그대로 재발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리장 안에서 원본을 발견하고 신기한 나머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1997년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을 만든 영화감독 겸 작가 노라 에프런은 이 서점의 오랜 단골이었다. 그녀와 델리아 에프런 ⎯ 노라 에프런의 자매이자 공동작가 ⎯ 은 이 영화 속 독립서점의 모델로 일찍이 북스 오브 원더를 생각했다고 한다. 세트 디자이너들은 북스 오브 원더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세트장을 만들었고, 보다 실감 나는 표현을 위해 서점 직원들이 촬영을 도왔다. 영화의 주인공 멕 라이언이 촬영연습차 서점에 나와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You've Got Mail> 중에서. 사진 thepioneerwoman.com


몇 년 전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한국계 미국인 태 켈러(Tae Keller)의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When You Trap a Tiger)>은 2021년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 3세 소녀 릴리의 눈으로 본 세상의 이야기들이 할머니와 호랑이에 얽힌 동화처럼 전개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이 읽어주던, 그리고 나도 좋아하는 닥터 수스(Dr. Seuss, 1904-1991)의 책들과 나의 평생사랑 책인 <어린 왕자>도 있었다.


설날이 막 지나서인지 우리나라 작가가 쓴 <내일은 설날>이란 책도 있었다.

음력설을 일컬어 중국 설날(Chinese New Year)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곳에 살며 많이 보았다. 그럴 때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음력설을 쇠니 'Lunar New Year'라고 설명하기를 잊지 않았다.


책과의 소개팅(Blind Date with a Book) 코너다. 주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독자를 위한 책들이었다. 책을 감싼 포장지의 그림과 글들이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적잖이 불러일으킨다.


북스 오브 원더는 그동안 네 번의 이사를 거쳐, 2004년 지금의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빈티지, 고서, 희귀본, 소장용 책 등 엄선된 다양한 어린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여러 초판 동화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한정판을 모아 전시해 놓은 갤러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나누기 시간(Storytime)과 작가, 아티스트들의 이벤트도 매주 열린다.

스토리타임에 쓰이는 책과 인형들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시와 동화 캐릭터들의 장식


프리스쿨에서 일할 때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던 생각이 난다. 말 안 듣고 교실을 배회하던 아이도 방황을 멈추고 책 앞으로 달려와 눈을 반짝이곤 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책은 꿈이고 행복이리라.

동화와 동심 사이 딱 맞아떨어지는 주파수, 못 말리는 케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렸던 그 기분을 다시 맛보고 싶을 때, 나는 동화를 읽는다. 그러면 아련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세상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더 크다고 믿던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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