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Mar 22. 2024

뉴욕 흐림 서울 비

서울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근황과 여름휴가 계획, 아이들 이야기 등, 언제나 그렇듯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이어진 대화였다. 비행 열다섯 시간, 시차 열네 시간의 거리가 꿈인 듯했다.

서울에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은 집 밖을 나서면 서촌이나 광화문을 갈 수 있을 것 같거나, 친구랑 약속하고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황홀한 그 잠깐의 기분에서 빠져나오기가 못내 아쉽다.

친구와 통화하는 내내 신나고 신기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얘랑 어떻게 만났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만남은 한 공간에서 우연히 시작된 적이 많았다. 한 동네에서, 같은 반에서,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사귄 친구들은 우연이라기보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만난 것 같기도 하다. 만남을 거듭하며 서로 닮은 점을 찾게 됐고 끌리게 됐다. 어릴 땐 같은 놀이를 좋아하는 친구와 어울렸고, 학교 다닐 땐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친구도 많아졌다. 사춘기에 들어서며 대화 상대는 부모님에게서 친구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나는 나와 닮은 게 많은 친구가 좋았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이 나와 비슷한 성장과정,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마치 주변의 등이란 등이 일시에 다 켜지는 것처럼 밝고 따스했다. 공통점 많은 친구와 같이 있으면 편하고 내 어떤 말도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자주 외로움을 탔던 데다 기댈 사람이 필요했을까. 생일이 늦고 체구가 작았던 나를 언니처럼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약해질 때는 더 누군가를 의지하고 위로받고 싶은가 보다. 아기를 낳고 2인실에 입원했을 때 옆 침대 산모와 단 하룻밤만에 사돈의 팔촌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를 다하고 언니 동생 사이가 됐으니 말이다.

처음 만난 상대와 서로 닮은 점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친근하게 느낀 건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너무 달라서 끌린 적도 있지만, 누군가와 친해진 이유는 대부분 공통점 때문이었다.


그렇게 친해져 둘도 없을 것 같던 사이가 조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때는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낯섦이 느껴지고, 결국 누구나 타인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현타가 온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할 때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달콤해 헤어지기 싫은 나머지 결혼을 결심한 건 설마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너도야? 나도야!" 하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과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으며 도대체 어떻게 같이 살겠다고 다짐한 건지 나 자신을 이해 못 하겠는 순간이 왔다. 그동안의 숱한 헤어질 결심은 실행에 옮기진 못할망정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한 집에서 살아간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처음엔 너무 같다고 느껴 가까워진 관계는 나중엔 너무 다르다고 느껴 종지부를 찍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래된 관계는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에 우리는 생각보다 참 인색하다.  


나라밖에 나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다 보니, 나에겐 장소들도 친해지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대상이었다. 전에 살던 곳과 비슷한 장소나 분위기를 찾아 안착했던 마음은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며 움츠러들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받은 문화충격은 그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작은 산 같은 것이었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도 고향인 서울과 닮은 점이 많아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점점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점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낯섦이 나의 지경을 넓혀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뉴욕 흐림 서울 비 ⎯ 날씨처럼 역사도 문화도 전혀 다른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이 좋다. 같아질 수 없어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 각각의 각각임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이방인으로 살아보고서야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좋아하는 법을 배웠다. 생소하던 것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마음이 열렸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낯선 것들을 향해 오늘도 악수를 청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화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