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과 표정이 서로 다른 기묘한 순간이 있다. 바로 거울을 들여다볼 때다.
나 지금 기분 괜찮은데 거울 속 내 표정은 뚱하다. '엥?' 속으로 놀라며 이내 씩 웃어본다. 그 순간 기분은 쭈그러들고 만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이 내 기분을 따라잡지 못하는 건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창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던 고등학교 시절, 걸핏하면 침울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 때부터는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어김없이 화났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사람들과 섞여있는 시간 대부분 나는 내가 즐거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속마음은 아니었던 걸까. 나도 모르는, 어디서 온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안에 있었던 걸까.
사진에 찍힌 내 얼굴도 마찬가지다. 작년 연말 새로 이사 온 보금자리에서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에 한껏 들뜬 나는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관광객들이 삼직한 털모자까지 갖춰 쓰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날 저녁 휴대폰 앨범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중얼거린 말, "나 왜 화난 것 같지? 아닌데." 나름 웃는다고 지은 표정이 하나같이 시큰둥해 보였다.
그날 이후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가끔씩 얼굴을 만져보게 됐다. 나 지금 웃고 있나? 나 지금 슬픈 얼굴인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언젠가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입가 주름이 깊어지는 걸 막으려면 '은~' 소리를 길게 빼며 입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나. 몇 번 해봤는데 재미없었다. 차라리 많이 웃는 게 나을 것 같다. 웃어 생긴 주름은 심지어 예쁜 주름이라고도 하니까.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얼굴에서 보인다고도 한다. 인생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나의 인상을 만들고 나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가 가진 표정들은 나의 삶과 관련이 있고, 이는 특정한 사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상과 연결되는 것 같다. 자주 소소한 행복감에 젖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 ⎯ 내 표정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늘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현실은 웃지 못할 일 투성이다. 다만,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중요할 뿐이다. 나에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까.
혼자 있을 때의 표정이 진짜 내 표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선 나 자신을 향해 빛나는 미소를 지어봐야지.
내 얼굴을 책임진다는 말은 왠지 무겁다. 책임지기보다 사랑하고 싶다. 내 얼굴을 사랑한다는 건 곧 내 삶을 사랑한다는 뜻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