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남편의 친구 부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마침 근처에서 열리고 있던 농산물 장터를 한 바퀴 구경하고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 신호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던 자동차에서 "주차하느라 빙빙 돌고 있어요. 곧 갈게요" 하는 말이 들렸다. 남편의 친구 부부였다. 주차 잘하고 천천히 오라 말하면서, 주말이고 붐비는 곳이라 주차하기 사납겠다 걱정이 됐다.
식당에 도착해 예약을 확인했다. 일행이 모두 도착해야 테이블로 안내해 줄 수 있단다. 창 밖이 보이는 식당 입구 대기석에 앉아, 주차하느라 애먹고 있을 그들을 기다리며 내 자동차 생각이 났다.
둘째를 낳고 우울감을 떨치느라 운전을 배워 뒀던 게 나라밖 그것도 차가 곧 다리가 되는 서버브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운전은 거의 필수였고, 별안간 바뀐 환경과 이별의 후유증으로 우울하던 마음은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님으로 조금은 위로가 됐다. 그러고 보면 나의 우울감과 자동차는 질긴 인연이다. 슬프거나 답답할 때면 슬그머니 차 안으로 기어들곤 했으니까.
어느 날인가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었다. 속을 털어놓을 친구나 부모님이 있는 곳은 자동차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거리였다.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집 근처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루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걸려있던 해가 내일을 향해 사라지자 금세 주위가 어둑해졌다.
잠시 후 교회 건물 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일을 마치고 나오던 스태프 한 명이 내 차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조수석 창을 통해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쉬고 있었다고 말하고는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걱정해 친절한 말을 건네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였다.
나는 운전을 즐기는 편이다. 운전을 좋아하는 아빠를 닮아서일까. 젊은 아빠는 운전을 잘하셨고, 가족을 차에 태우고 다니는 걸 좋아하셨다. 어릴 때 나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언제나 안심되고 신이 났다.
이론시험 한 번, 실기시험 두 번만에 운전면허를 딴 나는 바로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신나게 몰고 다녔다. 운전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이 마치 운전하기 전과 운전한 후로 갈리듯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미국에 와서는 이론시험 두 번, 실기시험 두 번만에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내게 일어난 최초의 접촉사고는 몇 년 전 시카고에서였다.
신호대기를 하던 내 차가 갑자기 꿀렁이며 뒤쪽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났다. 나와 첫째는 마주 보며 동시에 "우리 받쳤나 봐" 했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는 비상등을 켜고 길 가로 빠져나와 다시 차를 세웠다. 뒤차 운전자가 우리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다. 신호를 기다리던 그녀는 갑자기 카시트에서 뛰어내린 아이를 보고 깜짝 놀라 그 순간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는 괜찮냐고 묻고는 차에 별다른 흠집도 없고 다친 사람도 없으니 가던 길 가자고 했다. 아기엄마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며 차로 돌아갔다.
차 안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운전할 때뿐 아니라 그냥 차에서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밤중에 혼자 차 안에 앉아 음악을 틀었던 적도 있다. 캄캄한 차고, CD 플레이어 전원 등만 남은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중독 같은 시간이었다.
요즘은 스트리밍이 대세니 최근에 가졌던 차에는 CD 플레이어가 아예 없었다. 처음 CD가 나왔을 때 LP가 더 좋았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CD 음악소리가 더 친근하다.
많은 날을 울면서 출퇴근하던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닐 때와 딴판으로, Bright horizons 프리스쿨에 다닐 땐 출퇴근 길 대부분이 행복했다. 늘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게 살아있는 느낌을 북돋아 줬고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며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들과 뜻이 잘 맞았다. 운전과 음악이 함께한 아침 출근길은 설렜고 오후 퇴근길은 뿌듯했다.
작년 8월 차를 팔고 왔을 때 나는 마치 연인과 헤어진 사람처럼 갈피를 못 잡고 서성거렸다. 자동차는 지독한 길치인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이 있는 곳이었고, 마음 놓고 펑펑 울어도 되는 힐링의 공간이었으며, 오롯한 나만의 자리였다.
이제 내 차에서 음악을 들을 수도 바빠 보이는 다른 차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차창을 몽땅 열고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얼굴 가득 맞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또 다른 나만의 공간으로 찾아든다. 나의 테이블로, 나의 랩탑으로, 그리고 나의 글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