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날 아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튜브 채널들을 훑어보다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 검색한 적도 본 적도 없는 내 머릿속 주제의 영상이 버젓이 내게 제공될 때다. 이게 유튜브 알고리즘이란 거구나, 생각보다 예리하군, 감탄하면서도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하다.
유튜브라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생겨난 게 불과 이십 년 전이다. 수많은 유튜버와 콘텐츠, 매달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운 이용자가 만들어지기엔 참 짧은 세월이 아닐 수 없다. 나라 밖에 살고 있는 나는 뉴스를 비롯한 여러 우리나라 방송을 유튜브로 보고 있다. TV를 대체하는 뉴미디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문득,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옛날엔 어떻게 살았더라? 하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 2009년 무렵이니, 사실 그리 옛날도 아니다. 그런데 벌써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다니, 옛날 아닌 옛날이라니. 상상만 하던 일이 눈앞에, 손안에 주어지던 순간은 그만큼 기적 같았다. 나는 그 기적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2010년 무렵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도로 폴더폰으로 바꾸기도 했었다. 기계치인 데다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얼마 안 가 불편함을 못 이기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 불편함의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이 늘 반 박자쯤 뒤진다는 느낌이었다.
더 거슬러올라가, 휴대폰이란 게 아예 없던 시절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우리 집에 전화가 처음 생겼다. 그전에는 공중전화를 쓰거나 집 앞 구멍가게에 가서 요금을 내고 전화기를 빌려 썼다. 집 전화가 개통되고 나서 가끔 시외나 해외 전화라도 하게 되면 어른들은 목청을 한껏 돋우어 고래고래 소리를 치거나 ⎯ 연결 상태가 불량하고 혼선도 흔하던 시절이라 ⎯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요금 나와, 그만 들어가"를 외치곤 했다. 대체 어디로 들어가라는 건지, 혹시 나 한번 바꿔주려나 어른들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목을 빼고 기다리면서 그게 궁금하기도 했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헤어져 연락이 끊긴 사람은 찾을 길이 없었다.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수첩을 잃어버리면 하루아침에 인간관계가 모두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프다.
그런가 하면 사전보다 더 크고 두꺼운 전화번호부에는 거의 전 국민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가나다라 순으로 실려 있었다. 친구와 놀다 심심해지면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우리 집과 친구 집 전화번호를 찾아보기도 하고, 희귀하거나 발음이 재미있는 이름들을 읽어가며 놀기도 했다. 그땐 전화번호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름만 들어도 친구의 번호가 툭 떠오르곤 했으니까.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이젠 내 손안에 마치 세계가 들어와 있는 듯 든든한 스마트폰이 있다. 전화나 문자는 물론, 카메라도 앨범도 이 안에 있고 영화나 드라마도 볼 수 있으며 책도 읽고 카페에 가면 전화기로 커피 값도 낼 수 있다. 나는 바다 건너 사는 가족, 친구들과 이 조그만 전화기로 얼굴 보며 이야기도 하고 단체톡방을 만들어 문자로 수다도 떤다. 멀리서도 가질 수 있는 연결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처음 미국에 왔던 이십 년 전만 해도 인터넷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느렸고, 심지어 인터넷 사각지대도 있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보다 더디긴 했지만 이곳 인터넷도 특히 팬데믹을 겪으면서 많이 발전했다.
스마트폰 안에는 지도도 들어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길치인 나는 아직 내비게이션이 널리 쓰이기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걸핏하면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누군가 운전하는 내 옆에서 커다란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 좌회전 우회전을 일일이 말해주거나, 혼자 가야 하는 곳은 사전답사를 통해 미리 길을 알아놔야 했다. 휴대폰에 앱(App)만 설치하면 온라인 지도 이용은 물론 버스나 지하철 도착 시간까지 알 수 있는 요즘이 나는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옛날 도서관도 생각난다. 지금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건물 안에서 그러나 전혀 딴판의 풍경이 펼쳐지던 예전의 도서관. 지금의 디지털 자료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 책을 대출하려면 도서관 로비에 즐비하던 서랍에서 도서 목록카드를 찾아 대출카드를 작성한 뒤 사서에게 건네줘야 했다. 원하는 책이 없으면 사서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신청한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오래된 종이 냄새에 파묻히던 기억도 난다.
온통 디지털로 가득한 세상, 매일 매시간 새로운 정보가 차오르는 시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편리한 이 지구상에서 나는 잘 살고 있나? 생각해 본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아날로그 세상보다 선택의 기회가 훨씬 많아진 세상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하고 나 자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좁디좁은 나만의 세계에 갇혀버리거나 세상의 변화에 어두워져 선택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빠르고 편리한 삶을 누리면서도 우리는 예전 아날로그 세상의 모습이 담긴 드라마에 열광하고 레트로 패션에 끌리며 옛 노래에 위로받기도 한다. 그래 본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내가 다시 삐삐나 피처폰을 쓸 리는 만무하고, 온라인 지도 서비스를 마다하고 굳이 부스럭부스럭 종이 지도를 펼쳐들 이유도 없다.
다만, 복고의 정서엔 그리움이 있다. 옛날 모습이 담긴 드라마나 영화 속 어딘가에 그때의 내가 있을 것만 같다. 첨단의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며 가끔은 아날로그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것, 그리고 이야기와 글로 이러한 정서를 다음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것, 모두 우리의 특권일 것이다.
지구라는 이 별에서 계속 살아왔는데도, 삶의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해 갑자기 다른 별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시간 속을 흐르듯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를 이 여행의 콘텐츠, 꽤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