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Jul 31. 2022

알아감의 여정

어릴 때 성당에 가곤 했다.

부모님은 성공회 성당에서 결혼하셨다. 성공회(Anglican Church)는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영국 국교회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유아 영세를 받았고 안나(Anna)라는 이름도 그때 받았다. 아무도 내게 신자가 되고 싶냐고 묻지 않았으므로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성당에서 결혼했지만 종교 활동에 그리 열심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활절이나 성탄절을 성당에서 보낸 굵직굵직한 기억들은 나의 유년기 한 편을 차지하고 있다.

성당 안에선 늘 특별한 냄새가 났다. 의자에서도 제단에서도 나무 향기가 났다. 지금은 파이프 오르간이 있지만, 옛날엔 수녀님이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셨다. 천국에 가면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오르간 소리에 취해 눈을 들면 햇빛을 머금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영롱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게 무슨 소린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 성당은 몽환적인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미사를 마치면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성당 앞뜰에서 실컷 뛰어놀았다.

부활주일에는 알록달록 예쁜 계란들을 받았다. 하양, 노랑, 분홍 계란들에 사인펜으로 눈과 입이 그려지고 색종이로 작은 날개까지 붙여진 병아리 모양의 계란들이었는데, 아끼다 못 먹기도 했다.


사진 Pixabay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리는 자정 미사에 엄마와 함께 가곤 했다. 성당 가득 자리를 메운 사람들과 찬송가를 부르고 성찬을 나누며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송을 듣는 시간이 황홀했다. 나는 어떻게든 엄마를 따라가려고 잠을 참으며 기다렸다. 미사 시간에 쿨쿨 자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한 번도 졸지 않고 미사를 드렸다. 어린아이가 어쩌면 그렇게 잠이 없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성당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성당에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우연하게도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모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들이어서 1주일에 한 번씩 10년 동안 꼬박 학교 채플에 참석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성당이 좋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어느새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누군가의 존재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느껴졌다. 나는 그를 감지하고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성당이나 신앙생활과는 동떨어져 살았다.

대학 때 남편을 만나, 시부모님의 소원대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성당과는 더 멀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든 일이 생기면 교회에 갔다. 그리고 힘을 얻으면 다시 교회와 멀어졌다. 왔다 갔다 날라리 신자로 살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교회는 들락날락했지만, 그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생전 처음 타지 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시절, 친구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상처 투성이었던 마음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내게 성경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던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하던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7년 동안 성경을 공부했고, 그중 4년은 아이들의 성경공부 선생님으로 지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준 사람들이 나온다. 아브라함, 야곱, 베드로, 바울 등이 그들이다. 새로운 이름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새로운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이 내 한글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바람에 안나(Anna)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하나님은 안나라는 이름을 통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찾게 하고 싶었을까.

서울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성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치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는 하나님의 영처럼 한결같다. 내 유년기 추억을 모두 품고 서 있는 성당처럼 그는 내 삶도 죽음도 모두 품고 있다. 나는 그에게 용광로 같은 뜨거운 사랑이나 가슴 벅찬 감동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다. 다만, 너무 가까워서 거리를 의식할 수 없는, 내 호흡과 함께 있는 것 같은 존재로 그를 느껴왔다.

나는 그를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내 삶이 곧 그를 알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성당에 간 어린아이처럼 호기심과 동경으로 그를 알아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 채플 시간에 처음 읽은 후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말씀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시편 23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의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