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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y 22. 2022

결혼의 풍경

며칠 전  딸이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곳은 몇 주간의 비와 함께 긴 겨울을 벗어나나 싶더니, 봄을 건너뛰고 바로 여름으로 가는 듯하다.

따뜻해지는 5월에서 6월, 이맘때 많은 결혼식이 치러진다.


미국 사람들은 주로 교회나 성당, 경치 좋은 골프장 클럽하우스나 파크, 와이너리, 예쁜 농장 등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큰 파크나 바닷가에서 결혼사진을 찍거나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도 많이 볼 수 있다.

친구들로 구성된 신랑 들러리(groomsmen)와 신부 들러리(bridesmaids) 각각 네댓 명 정도가 먼저 들어와 기다리면, 뒤이어 신랑과 신부가 입장한다.

딸의 친구 결혼식에서는 신랑과 신랑의 부모님이 함께 입장하고, 신부도 부모님과 함께 입장했다 한다. 이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딸과 함께 입장하는 신부의 아버지만 주목받는다는 어른들 세계의 질투를 나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신랑과 신부가 준비해 온 혼인 서약을 읽고 반지를 교환한다. 결혼의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주례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하면, 하객들의 축복 속에 신랑과 신부가 키스를 한다.

보통, 신부가 웨딩 플래너를 섭외하고 웨딩드레스, 청첩장, 사진, 꽃장식, 웨딩 케이크, 결혼 축하 파티인 리셉션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면 신랑은 신혼여행, 저녁식사, 부케, 리셉션 DJ 섭외 비용을 책임 진다. 그러나 이것은 고정된 룰이 아니므로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두 리셉션 장소로 이동한다. 호텔이나 식당, 또는 결혼 축하 파티 전용 연회장인 뱅큇에서 저녁 식사와 파티가 열린다.

하객들은 파티 장소에 도착하면 술과 가벼운 음식을 먹으며 신랑, 신부를 기다린다. 신랑, 신부는 파티에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거나, 결혼식 복장 그대로 파티 장소에 오기도 한다.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고,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가 함께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파티가 시작된다. 분위기가 한층 즐겁고 유쾌해지는 순간이다.

신랑, 신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각 테이블에 음식 서빙이 시작된다. 하객들의 자리 배치나 테이블의 꽃장식은 결혼식 주최 측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므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저녁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와 신랑 각각의 베스트 프렌드가 짧은 결혼 축하 연설을 하고, 양가 부모들이 자식을 결혼시키는 소회나 새로 탄생한 신혼부부를 축복하는 연설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혹은 밤새도록 축하 파티는 계속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혼식에는 신랑, 신부가 태어나 자라거나 오래 머문 곳의 문화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나 다채롭고 흥미롭다.

딸 친구 결혼식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구경하며, 나의 결혼식 날이 떠올랐다.

결혼식 시간이 점심시간에 맞춰 정해진 11시여서, 새벽부터 야외 촬영을 했었다. 조금 쌀쌀하고 맑은 가을날이었다. 남편은 신앙이 없었고 우리 가족은 성공회 신자였지만, 시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많은 친구들이 와서 동갑내기 남편과 나를 축하해 주었다.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다.


어릴 때 어른들을 따라다녔던 결혼식에서는 하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곤 했었다. 그중에서도 고운 색동 무늬의 얇은 박스에 들어있던 보자기나 수건이 생각난다. 어린 내 눈에 너무 예뻐 보여 탐이 났었다. 갖고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면, 나는 그 보자기나 수건 들을 이불처럼 인형에 덮어 주거나,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난다, 난다!" 소리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가 밥을 먹느라, 밥 먹고 나서 신발 한 짝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다른 이와 신발이 바뀌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결혼식에 가면 대접받던 주된 메뉴는 갈비탕이었는데, 고기는 몇 점 들어있지도 않던 그 멀건 갈비탕 맛이 왠지 그리워진다.


요즘은 실속 위주의 결혼 문화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결혼식 비용이나 규모를 간소화하는 스몰 웨딩이 많아지고, 집과 가전, 가구에 더 집중하는 추세라고 한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와, 결혼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나중에 결혼하려면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말하는 딸이 진짜 다 컸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는 만큼 신랑, 신부의 개성이 존중되고 반영되는 결혼식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날의 주인공은 오직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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