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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안나 Aug 26.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거세된 남성성,  동등한 시선





  여학생들 앞에서 직접 모델이 되어 소묘를 지도하던 마리안느의 눈에 보름달 아래 치맛자락이 불타오르던 엘로이즈를 그린 자신의 그림이 보인다. 마리안느의 허락 없이 화실 중앙에 그림을 꺼내놓은 학생은 제목을 물어본다. 어느새 젖어든 눈빛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대답한 마리안느는 회상에 잠긴다. 파도치는 바다 위 나룻배, 남성들이 가득한 배의 후면에 홀로 자리한 마리안느는 외딴 섬 저택에 도착한다.





하녀 소피가 문을 열고, 다음날 백작 부인과 딸 엘로이즈를 마주한다. 정혼자에게 전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초대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완성된 초상화와 함께 이들은 이별을 맞이한다.



  많은 시간이 지나 마리안느는 화랑에서 딸과 함께 화폭 속 자리한 엘로이즈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책을 손에 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음악당에서 자신이 언급했던 비발디의 《사계》를 감상하며 울먹이는 엘로이즈를 멀리서 지켜본다. 이렇게 두 여인은 마주하고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은 서로의 가슴에 온전히 남아 소멸하지 않는다.     




  셀린 시아마가 연출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남근 중심주의가 득세했던 18세기 후반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결혼을 앞두고 정혼자에게 초상화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던 당시의 관습을 담은 시대물을 통해 셀린 시아마는 전복적이게도 남성성을 철저히 배제한 여성 영화를 탄생시킨다. 여성이 외모로 거래되던 세태에 의해 초상화가 의뢰되고, 여성 화가는 존재했으나 여성 화가의 이름은 용인되지 않던 시대였다. 법적으로 여성에게는 재산권이 없었기에 백작 부인은 죽은 첫째 딸 대신 수녀원에 있는 둘째 딸을 데려와 결혼을 시켜 사위에게 재산을 이양해야 했다. 교육받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여인들이 하녀 아니면 창녀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소피는 임신한 아이를 낙태해야 했다. 이렇듯 작품을 관통하는 가부장적 시대상 속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남성들은 나룻배 위 남성들과 그림을 찾으러 온 심부름꾼 그리고 이후의 화랑과 음악 홀을 메운 무의미한 인물들뿐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에서 남성 권력 아래 차별받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상황이 어떻게 남성성이 거세된 화면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오롯이 작품을 이끌고 가는 여성 인물들에 집중하고자 하는 셀린 시아마의 연출관에 있다. 10대 소녀들의 성장통을 그려낸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와 소녀들의 연대와 여성 인권을 다룬 <걸후드>(2014)에서 셀린 시아마는 의도적으로 작품 속 부모의 등장조차 최소화시킨다. <워터 릴리스> 속 플로리안을 통제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잠시 들릴 뿐이고, <걸후드> 속 마리엠의 엄마가 등장하긴 하지만 최대한 절제된 대사 속 정면에서 비켜간 시선만이 자리한다. 이와는 대비적으로 관객들은 화면 중앙을 파고드는 주인공들의 시선과 존재감이 점차 묵직하게 성장해감을 지켜보게 된다. 이처럼 셀린 시아마는 주요인물을 깊이 있게 포착해내며 객체화하지 않고 주체화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셀린 시아마가 조명하고자 한 가치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페미니즘이다. 또한 불합리한 사회와 제도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여성성을 조명함에 있다.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길 원치 않는 셀린 시아마는 남성들이 등장할 이유와 필연성을 배제한 체 철저히 여성 인물의 서사에 집중한다.    



 

  마리안느가 배를 타고 섬의 화려한 고택에 도착하지만 초상화를 완성할 때까지 백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어떠한 성정을 지닌 남성이었는가는 가족의 삶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엘로이즈는 수녀원을 택해 속세의 삶을 떠나고자 했고, 언니는 결혼을 앞두고 절벽에 몸을 던져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거실에 자리한 결혼 전의 초상화 아래 파리한 백작 부인은 오랫동안 웃음을 잃었던 여인이다. 엘로이즈와 결혼을 앞둔 정혼자에 대해서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귀족자제라는 정보 이외에는 전달하지 않는다. 어린 하녀 소피가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 백작 부인이 집을 비운 동안 소피의 낙태를 돕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태아가 누구의 아이인지 묻지 않는다. 백작 부인의 결혼 전 초상화를 그린 당대의 유명한 화가인 마리안느 아버지의 이름도 작품 속 마지막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포함한 여인들 모두 누구의 무엇이 아닌 오롯이 그들 자신이다.      




  당시 남성의 초상화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여인의 초상화는 남성의 소유물로서 아름다운 정물처럼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자신이 은밀히 관찰되어 그려진 초상화에 대해 생명력과 존재감이 없다며 힐난한다. 이에 그림의 규칙과 관습을 이야기하던 마리안느는 자발적으로 포즈를 취하겠다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다시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엘로이즈의 자아가 담긴 초상화를 완성해가며 이들은 화가와 모델의 관계를 벗어나 동등한 시선이 교차되고 교감하는 관계로 발전된다.



  하녀 소피 또한 백작 부인의 부재 동안 신분의 차이를 벗어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와 자매와 같은 시간을 보낸다. 오히려 소피를 배려하고자 정면에 배치된 식탁 위 자수를 놓는 소피가 보이고 그 옆에서 마리안느는 와인잔에 와인을 채우고, 요리를 맡은 엘로이즈가 하얀 앞치마를 걸치고 화덕에서 스튜를 요리하는 모습은 이들의 신분이 전복된 듯이 보인다. 이후 식탁에 마주 앉아 서로를 응시하는 평등한 시선 속에서 그들의 웃음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고 밝다.     




  초상화의 완성과 함께 이들은 모두 각자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진실한 교류를 통해 이후의 삶은 보다 충만하고 단단해졌을 것이다. 셀린 시아마는 남성 예술가에게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주는 여성을 칭하는 ‘뮤즈’와 같은 일방통행적인 개념을 거부해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화가와 화가를 응시하는 모델의 시선이 동등함을 언급한 것처럼, 셀린 시아마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주 정면을 향하여 관객을 응시하는 듯 느껴진다. 그사이 관객들은 배우들과 시선을 맞추고 그들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셀린 시아마가 원하는 평등한 시선 속 가능한 연대와 교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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