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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안나 Nov 23. 2021

제주 엥기리다 5

설레이다 in Jeju




  2019년 말 제1차 대한민국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이후 2020~2024년까지 5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지원사업을 활발히 추진 중인 서귀포시에 제주살이를 시작한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문화 서귀포’라는 기획의 방향도 매우 만족스럽다. 역사적으로 문화의 꽃을 피운 나라들은 침략과 약탈의 재화 위에 세워진 곳이었다. 산업혁명 이후는 환경과 인권을 유린한 거대산업 국가들이 문화를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으로 인한 항공기술의 발전으로 다른 나라와 대륙으로의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자연과 관습이 각 나라의 경쟁력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제 일제 치하와 6·25전쟁을 겪고도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우리나라는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끊임없는 침략의 대상이었던 작은 반도 국가가 2차 산업에 이은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더니 K-Wave를 일으키며 문화선진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제주는 과거 유배의 섬이었다. 통일신라 이후 대부분의 수도는 한반도 아래 자리 잡지 않았고, 먼 남쪽 섬 제주는 조정에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을 실어 보내고 오는 배편엔 조공을 위한 특산물을 실어갔다. 200년간의 출도금지령이 있었던 조선 시대(1629~1823) 이후에도 교육과 문화적 전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제주는 어떻게 지금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을까. 물론 70~80년대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하며 자본의 유입이 이어지고 정부정책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투자로 교통과 인프라가 확대된 영향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제주스러운 자연환경과 생활문화가 그 핵심일 것이다.


  제주의 문화는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사면을 둘러싼 바다와의 끊임없는 투쟁과 달램을 통해 지혜롭게 다져진 문화이다. 화산폭발로 생성된 메마르고 거친 토양은 비를 머금지 않기에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제사에 곤밥(쌀밥)을 올리는 것을 가장 큰 효로 여겼다. 마실 물조차 귀했기에 풀도 귀했던 제주는 거름을 위해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으나, 경조사에나 맛볼 수 있는 살점은 동등하게 모두에게 분배되어야 했기에 고작 세 점을 넘지 못했다. 교통이 불편하기에 대부분의 일손은 주변에서 구하고 노동으로 갚았으며, 주변의 어려운 이들은 낮은 돌담을 통해 가족같이 돌보고 거두었다. 이처럼 제주를 살아가는 선한 이들이 제주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다독이며 이뤄 온 문화가 노지문화이고 가치 있는 문화유산인 것이다.



추수한 고구마를 바로 썰어 밭에 널어 말리고, 낮은 돌담 위로 귀한 제사 음식을 건넨다.

가난하지만 이웃이 있어 견뎌낼  있는 , 이것이 제주의 괸당문화이다.




  최근 갑작스러운 자본의 유입과 관광객 증가로 제주의 생태가 파괴되고 무분별한 난개발로 훼손되는 자연을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인정받은 천혜의 아름다움이 세대를 거쳐 향유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제주의 방향성은 분명 현대화가 아닌 보존에 있어야 하며, 변화라는 구실로 팽나무 자리한 마을을 없애고 돌담을 두고 안부를 묻는 삼촌들의 인사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주 엥기리다’의 회원들은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아니었지만 3개월간 나름의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서귀포의 마을을 담은 소박한 그림들은 제주의 삶을 선택하고 제주를 사랑하는 이들이, 제주의 하늘과 바다, 검은 현무암, 낮은 돌담과 가옥, 팽나무와 해녀 삼촌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한 오마주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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