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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안나 May 10. 2020

나에게 문학은 삶에 대한 구애였다.

I dwell in possibility




   나에게 문학은 삶에 대한 구애였다. 네모난 종이 위 활자는 동그란 지구를 흠모하게 했고, 현재형 아래 숨겨 있는 과거형을 궁금하게 했으며 다가올 미래형을 기대하게 했다. 이렇듯 나는 삶에 대한 끝없는 갈증을 활자 위를 오고 가며 달랬고, 언젠가는 이 자국들 위에 나의 자국이 이어지길 소원했다. 그러나 그 꿈은 외로웠다. 아니 꿈을 지켜내는 길은 외로웠다. 그 꿈은 소란스럽지 않아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았고, 수줍어 자라는 키도 보여줄 수 없었다. 세월에 나이테가 제법 굵어졌어도, 나는 그 길에 혼자였다.


   여리고 어린 산모의 몸을 헤집고 나온, 반항 가득한 남동생을 둔, 세상의 풍파에 지친 가장의 큰 딸로 태어난 나는 감정을 매번 안으로 삼켰어야 했다.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해서는 안되니까, 나는 동생을 챙겨야 하니까, 난 아빠를 실망시키면 안 되니까. 그렇게 나는 말수 적고, 바르고, 착한 아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아, 어머니, 당신은 나의 속을 태우는 광기를 모르셨다. 비 오는 날이면 가슴속 열기를 삭이기 위해 우산 없이 하굣길을 흠뻑 젖어 내려왔고, 뻘겋게 주저앉는 해를 눈이 저리도록 노려보곤 했다는 것을, 그러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왜 나는 장녀로 태어난 것인지, 당신을 아프게 하는 여자의 삶을 나도 따라야 하는 것인지..., 그리곤 집 안을 들어서며 생채기 난 가슴을 애써 감추었다.


    그런 나는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을 통해서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았고, 신경숙의 『외딴방』에서 청춘의 아픔과 날 선 세상을 경험했으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에게서 성과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와 같이 사막의 보물을 찾아 나서며 내 삶의 연금술을 꿈꾸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인생의 행로에서 별자리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고, 어깨 위 더해진 짐을 짊어진 채, 먼길을 돌아와 6년 전 나의 길 앞에 다시 섰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나이 든 어부처럼 이 항로의 끝에서 가라앉아 수장되더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마음으로 문학의 바다에 배를 띄운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브론테 자매, 실비아 플라스와 마주했고 조지 오웰, 이언 매큐언을 만났다, 그리고 윤동주, 최승자의 옆에서 한강과 황정은의 글을 읽는다. 3년 전 돛에 닿던 바람은 『바람의 딸...』 한비야를 다시 내게 데려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오고 가던 런던의 빅벤 아래에 나를 데려다주었고, 동그란 지구에 품었던 애정을 이어 작년에는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까지 다다르게 하였다. 3월에 첫걸음을 내디뎌 51일간 800km를 걸으며 마주했던 그 길들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바람과, 하늘과 주고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을 얻고 왔냐는 질문에 나는 ‘감사함’이라고 대답하였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서


   이런 내게 ‘태연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하는 지인들이 있다. 얼굴빛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나고 조급하고 아픈 모습을 왜 매번 감추냐고 그들은 묻는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수많은 삶을 지켜본 나는 수긍과 감사함을 배웠다. 때로 우리는 인생의 항로에서 뜻하지 않은 충돌을 당하고, 때 이른 하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감사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삶을 살아내는 길일 것이다. 나에게도 또 다른 폭풍이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필요하다면 방둑을 쌓고, 때로는 물길을 내어 바르게 틀고자 애쓸 것이다. 그러나 삶의 시계 초침이 멈추는 것을 인간인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돌아와 마주한 아빠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고 하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나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응대하며 나는 속으로 이야기했다. ‘아빠, 『82년생 김지영』은 아빠 딸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제라도 그런 말을 들려줘서 고마워요.’ 나의 상흔들을 애써 드러내어 보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I dwell in possibility” 에밀리 디킨슨 시의 구절처럼 여전히 나는 가능성에 깃들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잊지 않고 살아온 나는, 이제 흔들림 없는 삶의 이정표를 이 길 위에 세우고자 한다. 내가 온 생애를 통해 위로받았던 활자 위, 나의 자국을 잇겠다는 약속을 지키고자, 브런치에 ‘공감의 서재’를 마련했다. 이제 나처럼 문학 속에서 삶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 문학 속 인물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이들, 삶의 동반자가 필요한 이들에게 나의 어깨를 내어주고, 손잡아주려 한다. 꿈의 2막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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