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_1
생각해보면 진지하게 또는 막연히 기도해왔던 것들이 다 이루어졌던 거 같다.
이래서 말도 그렇지만 기도는 더더욱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어릴 적부터 커리어우먼이 항상 꿈이었다. 강남을 높은 구두 신고 누비며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고 바쁘게 일을 하는 그런 멋진 언니라고나 할까.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감사하게도 1달 만에 대기업 내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고, 4년 차까지 부지런히 근무했다. 그 후 2년동안 화장품 회사에서 비서 겸 마케팅기획팀으로 일했다. 원하던 대로 서울 바닥을 구두 신고 물집 잡혀가며 일해봤고,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대표님의 기분을 살펴가며 거래처들과의 진땀 빼는 통화로 바쁘게 일도 해봤다.
물론 내가 상상했던 꽃 날리며 뽀송뽀송한 나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노는 것에도 열심이었다. 국내는 물론 한 때는 해외까지 주말마다 다니며 어디 가면 빠지지 않게 열심히 놀았다. 이렇게 누구보다 재밌게 살던 나인데, 아무리 재밌고 즐겁게 놀아도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불안함과 이유 모를 무언가의 갈증이 있었다.
9월, 가을 낙엽이 마음을 더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회사와 또 대표님과 눈물의 퇴사를 하고 2주 뒤 난 유럽 그리고 산티아고로 떠난다.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근데 20대 초반도 아니고 탱자탱자 놀면서 여행하고 싶진 않았다. 의미 있게 유럽 여행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 정말 문득 순례길이 떠올랐다. 스페인하숙 보지도 않았는데, 생각이 나더라.
워낙 즉흥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뒷일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다. 마침 스페인에 친구도 있고, 파리에 친구도 있고 간 김에 친구들도 보고 와야지 하니까 in-out도 정해지고 척척 일이 맞춰졌다.
그렇게 날짜가 정해졌다.
한국에서는 순례길이 매우 유명해서 인터넷에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비수기 때 가는 거고 겨울 추위에 걷는 거라 고민도 좀 됐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영어 할 줄 아니까 뭐 어렵겠나 하고 정보들도 보다 말았다. 얼마 모으지도 못한 돈은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다 쓸 텐데 한 방에 쓰자라는 생각에 돈 아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데카트론에 가서 생전 처음 등산화도 사고 가방, 침낭도 준비했다. 등산복, 속옷도 2벌씩 준비하고 친구들이 챙겨준 발가락 양말, 연금술사 책, 해드 랜턴까지 챙겨서 짐을 쌌다. 의리 넘치는 친구가 연차까지 내고 나를 공항까지 배웅해줬다. 친구들은 물론 아는 사람들 전부가 왠지 너는 다시 안 올 거 같다며, 외국에서 살 거 같다며, 오는 거 맞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며 인사해줬다.
나 빼고 다 가본 유럽, 나의 첫 유럽이었다.
카타르항공을 통해 난 파리로 도착했고 난 평화를 원했지만 전혀 평화롭지 못했다.
왜냐하면 멍청하게 수화물을 찾지 않고 게이트로 나와버렸거든...... 인터넷때문에 유심을 갈아 끼우는데 정신이 팔려 내 앞의 사람만 따라 쭉 걷다 고개를 드니 게이트 밖이었다. 소름.
그냥 거기서 다시 게이트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짐을 찾았으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도 있다. 왜냐면 내가 너무 놀라 게이트를 다시 들어갔는데 아무도 날 막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레 겁먹어서 게이트에 있던 직원한테 짐을 놓고 와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그제야 제지당했다. 어이없음. 괜히 물어봤다가 복잡해졌다.
결국 방법은 항공사에 전화를 해서 항공사 직원이 나와 나를 친히 데리고 들어가야 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항공사 직원 전용 입구에서 카타르항공 번호로 전화를 하고 있는데 어떤 흑인 여자가 화난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리면서 내 쪽으로 왔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나랑 똑같이 지나쳐 왔던 거야. 왜 공항을 헷갈리게 이따구로 만들어놨나며 속사포 랩을 했다.
근데 너무 웃겼던 사실은 그 친구는 심지어 이 곳이 처음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둘 말고도 그곳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화물을 놓고 나와서 항공사 직원들을 찾고 있었다.
나만 이 세상에서 정신 놓고 사는 게 아니구나 라는 위안이 됐다. 다행히 나는 그 친구가 내 몫까지 열심히 카타르 직원을 불러줘서 마음 편하게 기다렸다가 직원을 만났다. 직원이 오자마자 도대체 왜 그냥 나간 거냐며 핀잔을 주는데 할 말이 없었다. 쏘리... 합니다.
시간은 좀 지체됐지만 다행히 우리 모두 짐을 찾았고 난 파리 공항 및 카타르항공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헤어졌다.
우버를 타고 프랑스 친구 토마스 집으로 서둘러 향했다.
토마스라는 친구는 5년 전 한국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인데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여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친구다. 정말 완벽한 파리지앵이라고 할까. 살기 위해 일을 하며 행복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다. 홈메이트들과 살고 있는 집에 자기 방을 나에게 제공해줬다. 프랑스에 온 걸 환영한다는 멘트와 한국 태극기를 방에 걸려 있었는데 혹시 내가 한국을 그리워하며 슬퍼할까 봐 태극기를 보고 힘내라고 걸어놨다고 했다. (파리지앵 스위트함에 1차 감동..)
파리에서 산티아고를 시작하는 프랑스 남부에 생장이라는 곳으로 가는 기차표를 2주 뒤로 예약했다. 2주 동안 짧지만 파리지앵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이 짧은 2주 동안 얼마나 야무지게 있었는지 이 글을 읽고나면 다들 놀랄 거다.
친구가 내가 파리에 도착한 첫날 자기가 좋아하는 공원이 근처에 있다며 데려가 줬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이었는데 너무 예쁘고 내가 생각했던 유럽의 이미지였다!! 프랑스 친구와 공원 잔디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풍경을 즐기고 있으니 하루 만에 내가 파리지앵이 된 거 같았다.
돌아온 저녁 홈메이트와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집 근처 바(Bar)로 향 했다. 프랑스인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이 전까진 실감을 못했다. 왜냐하면 토마스를 비롯하여 내가 아는 프랑스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이해하지 못했는데, 현지 레스토랑으로 가보니 정말 남녀노소 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테라스에 앉아서 담배를 쉴 틈 없이 피는데 숨쉬기 힘들 정도였다. 모인 친구들 중에서도 토마스 말고 전부 다 담배를 피웠고. 여자애들은 식사 중에도 프렌치프라이 하나 시키고 담배를 계속 피웠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담배 냄새에 다 묻혀서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 문화 충격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은 없었고, 그래서 난 그냥 파리의 거리 분위기와 친구들의 프렌치 발음을 배경음악 삼아 식사를 서둘러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