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_2
다음날, 난 관광지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친구가 그래도 파리에 왔는데 유명한 곳은 한 번씩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친절히 날 데리고 아주 빠르게 구경시켜줬다. 이때 안 다녀왔으면 정말 루브르는 물론 파리가 관광지로써 유명한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왔을 텐데 새삼스럽게 고맙다.
난 그리고 현지인이랑 다녀서 그런지 레스토랑 가는 곳마다 양이 정말 많아서 항상 남겼던 것 같다. 다들 파리 여행하면 양이 적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부분도 난 못 느꼈다. (개이득!)
파리를 즐기며 날씨도 좋고 이 도시가 너무 좋아서 기차표 더 미룰까 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 그 정도로 난 파리에서 너무 재밌게 보냈다. 어느 날은 친구와 공원을 걷다가 브레이킹 배드에서 나오는 아론 폴을 봤다. 아기와 와이프, 부모님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팬들이 부탁하니까 사진도 찍어줬는데 그 모습이 그사람의 휴식을 방해하는 거 같아 나도 사진을 부탁하고 싶았지만 그냥 보고만 말았다. 지나고 보니 아쉽다. 찍어둘걸!
나의 파리에서 다음 일정은 바로~~!!! 네덜란드 마라톤 경주 참여하기였다. 이것도 다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토마스의 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벨기에를 지나서 네덜란드에 도착!!
프랑스 국경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요~.
사실 이 친구들이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같이 갈래?라고 하길래 너무 좋다며 따라나섰다. 내가 이래서 이 친구를 좋아한다. 마라톤하러 국경 두번 넘어 가는 이 텐션! 그리고 나 혼자 여자라 충분히 불편했을 법도 했을 텐데 그런 거 없이 환영해주고 챙겨준 이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생각보다 금방 프랑스에서 네덜란드에 도착을 했고 경기 전날에 도착하여 1박을 했던 네덜란드 작은 동네는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했다. 네덜란드 온 김에 그래도 네덜란드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감자튀김도 한 개씩 사 먹고 광장에 있는 bar에 자리 잡고 앉아서 맥주도 한잔 마셨다. 아 여기서 술은 나만 마셨다. 애네 세명 모두 몸 관리를 하고 있다며 술도 안 마셨다. 콜라 아니면 tea.... 정말 대단한 의지의 프랑스 인들이다. 물론 세명 다 담배도 안 펴서 그건 너무 좋았던 부분~. 순례길가서는 술도 안먹고 정결해지자며 그 전 파리에서 실컷 먹어야지! 했는데 친구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외롭....
네덜란드 거리를 구경하며 느꼈던 점은 사람들은 전혀 아기자기하지 않은 거인같은데 건물들은 엄청 아기자기하다는 점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보통 사람들이랑 눈이 마주치잖아? 여기 네덜란드 사람들이랑은 눈을 못 마주친다. 정말 다 들 너무 거인 같아서 나에게 눈 마주치는 생명체라곤 어린이들...? 좀 슬펐다. 동양인이 작긴 작구나 ..흑
간단히 동네 구경도 하고 관광도 하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암스 트레 담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하는 2019 암스 트레 담 마라톤 경기에 참여했다. 내가 언제 네덜란드 올림픽 경기장에 와보겠냐며~ 안 그래요?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친구 니코가 문을 열어주며 "lady first" 라길래 매너 참 좋네 생각하며 문을 나왔는데 계단이었다. 그래서 난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먼저 내려가려고 하니 "안나, 계단인지 몰랐어 내가 먼저 내려갈게. 그래야 혹시라도 네가 넘어진다면 내가 받아줄 수 있잖아"라는데.... 이런말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거야?...... 생각지도 못한 파리지앵의 스위트함에 2차 감동..
날씨는 좀 우중충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경기에 참가 또는 응원하러 왔다. 나는 완주를 목표로 하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결승선까지 돌아올 동안 시간이 남아 암스트레 담을 혼자 걸어서 투어 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면 친구들이 어디쯤 뛰고 있지 언제쯤 들어오는지 공유가 됐다. 덕분에 걱정 없이 난 구글 지도 하나 믿고 시내로 나왔다. 와인 한잔과 누들을 주문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처음으로 길게 통화를 하고 나니 배터리가 없었다.
난 무슨 패기로 해외여행하는데 보조배터리도 안 챙기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결승선에 도착할 시간은 다 되어가고 대충 눈치로 물어물어 올림픽 경기장까지 왔다. 오는 길에 사람들이 꽃을 많이 사서 가길래 또 눈치껏 꽃 한 송이씩 사들고 결승선까지 와서 친구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매우 지긋하신 할머님이 결승선을 통과하셨다. 결승선 나오자마자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꽃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안아주셨다. 할머님은 내가 해냈다는 듯이 기쁨에 눈물을 보이고 할아버지는 그걸 너무 예쁘다는 눈빛으로 둘만의 세상을 만들고 계셨다. 그걸 보는 내가 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감동이었다. 나도 저렇게 내 인생을 함께 하며 저 나이 들어서도 날 예쁘게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함께.
그렇게 감동에 젖어있는 와중에 뒤에서 어떤 터치가 느껴졌다. 매우 기분 나쁜 터치. 뒤돌아보니 어떤 흑인 남자가 내 뒤에 딱 붙어서 자기의 성기를 내 엉덩이에 대고 있었다. 나 참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그 남자가 불쌍하기도 했다. 난 순례길 때문에 옷이 등산복 밖에 없다. 우중충한 노스페이스를 입고 있는 키도 작은 아시아인에게 그러고 싶었을까?.. 뒤를 확 돌아보며 째려보니까 금방 도망갔다. 세상 어디든 저런 놈들은 있어 으휴.
결승선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배터리는 꺼졌고, 너무 무섭고 난 여권도 안 가지고 왔고 이렇게 계획 없이 다니다가 결국 국제미아가 되는 건가 싶어 울먹이던 찰나에 그 많은 인파 속에서 토마스가 날 찾았냈다. "hey Anna!" 하는데 정말 무슨 천사의 목소리와 모습 마냥 빛이 났다. 거인들에게 둘러싸여 절망 중이었는데 그 속에서 난쟁이를 찾아준 너란 사람.. 덕분에 아무 일 없이 꽃도 전해주며 완주를 축하해줬다!
일본인인 친구도 함께 만나 인사도하고, 참 세상엔 재밌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했지만 나를 위해 생산적이게 열심히 살았다라기 보단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한 거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를 위해 취미 생활에 이렇게 열심히 였던 적은 언제였나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차에 돌아와서 파리로 돌아가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니 친구들이 땀에 젖은 운동복을 주차장에서 팬티바람으로 갈아입고 있았다. 놀라서 쳐다봤더니 "마라톤 하고 샤워를 못해서 우리의 땀냄새가 너를 괴롭게 할 테니 널 위해 우리가 옷을 갈아입고 있다며" 라며 all for you 라는데 또.. 파리지앵의 스위트함에 3차 감동.
이렇게 감동에 젖은 채로 기분 좋게 파리로 돌아왔다. 내가 고생스러운 순례길을 떠난 줄 알았던 많은 지인들이 내 근황을 보고 순례길 가긴 갈거냐며, 순례길 간 거 맞나며~ (머쓱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