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숙면했다. 16인 남녀 혼숙, 다양한 사람들의 잠꼬대, 코콜이, 위 층에 거구의 백인 사내의 움직임에도 1도 방해 받지 않고 너무 잘잤다. 스스로 놀라웠다. 나.. 군대 체질인가?
진동으로 아침 6시 알람을 맞춰놨다. 눈을 뜨고 침낭을 접으려고 일어섰다. 코골이 소리가 방을 울리고있는데, 놀랍게도 그 시간에 일어나서 침낭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인이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
침낭을 처음 사용해봤다. 솔직히 무시했는데 너무 아늑하게 잘 잤다. 피는 건 펴서 잘 잤는데 이제.... 어떻게 접는지를 몰랐다. 대충 눈치로 다른 한국분들 하는거 보고 있는데 내가 어지간히 답답했나보다. "안나씨, 줘봐요. 한번만 도와줄게요" 라고 하시더니 빠른 속도로 침낭을 접어 그 작은 침낭 커버에 쏙 넣으셨다.
와.우. 놀라웠다.
군대다녀온 남자라면 기본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 남자들 너무 멋있다. 내일은 꼭 내 힘으로 이 침낭을 넣어보리라 다짐했다. 잠을 잘 자서 몸이 가벼웠다. 한국인들이 다 짐을 싸서 하나 둘 출발을 시작하니 그제서야 이제 외국 사람들 하나둘 눈을 떴다.
배낭을 매고 친구가 선물해준 헤드랜턴 하나를 야무지게 머리에 쓰고 나도 숙소를 나섰다. 총 800km의 순례길에서 첫 고비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 걸어서. 산 위에는 당연히 먹을게 없으니 마을을 빠져나가기전에 빵집에 들러 크로아상샌드위치 하나를 포장했다. 꽉 찬 배낭에 겨우 쑤셔넣고 출발했다. 너무 어두웠다. 내 앞에 한명이 보였다. 유일하게 외국인들 중에 한국인처럼 이른 시간에 출발하신, 스코틀랜드에서 온 백발의 할아버지셨다. 앞에 동지가 한 명 보이니 어둡지만 덜 무서웠다. 속도도 엄청 빠르셨는데, 안보이면 길 잃을 거같아 열심히 할아버지 뒤꽁무니를 따라 피레네 산맥 으로 올라갔다.
조개 모양을 따라, 화살표를 따라 그렇게 묵묵히 얼마나 걸었을 까.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날이 밝으니 이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출을 보며 걸었다. 앞에 먼저 출발하신 한국분을 만났다. 일출을 감상하고 간다고 인사하고 지나쳤고, 63세 스코틀랜드 할아버지와 독일에서온 루나라는 여자애도 마주쳤다. 어느 정도 올라오니 마을 안내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곳에서 같이 우리가 지나온 마을에 대해 읽고, 서로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그렇게 셋이 어떨결에 같이 걷게 되었다.
같이 걷는 동지들이 있어 외롭지 않게 산을 올랐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날씨는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점점 안좋아졌다. 우중충 하긴했는데 역시나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근데 비만 오면 다행인데 바람이 태풍급으로 불었다. 그냥 걸어도 힘든 피레네 산맥을 내 전재산 배낭을 메고 비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힘들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경사가 생각보다 심했고 바람이 이세상 바람이아닌 것 처럼 부니까 날라가서 떨어질거 같은 느낌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바람에 공포를 느꼈다. 가방에서 급하게 우비를 꺼내 입고, 배낭도 방수커버를 씌웠다.
사실 난 나 자신과의 싸움 이런거 정말 좋아한다. 남이랑 하는 싸움 말고 혼자하는거. 절대 여기서 쉬지 않겠다. 조금만 더 가서 쉬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꿋꿋히 올라갔다. 제일 먼저 출발하신 한국분을 만났다. 언덕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 어제 저녁 한번 먹었다고 벌써 너무 반갑더라. 그렇게 같이 좀 더 걷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여 아침에 포장했던 샌드위치를 꺼냈다. 크로아상에 햄 치즈 들어있던 별거 없는 샌드위치 였는데, 정말 최고로 맛있었다.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앉아서 쉬고 있으니 점점 몸이 추워졌다. 비 쫄딱 맞고 밖에서 앉아 있으니 당연히 춥지. 서둘러서 먹은걸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래도 뭘 먹었다고 힘이 좀 났다. 그렇게 또 걸었다. 한국분은 또 먼저 빠른 속도로 걸어가시고, 나는 나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어느 순간 길이 좀 이상했다. 이길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 뒤에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경사가 너무 가파라서 이렇게 위험한 길을 걷게 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래도 걷다보니 사람들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는 short cut으로 온 길이었다. 나중에 내 뒤에 오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여자분 왈, 길이 너무 무섭고 이상했는데 너가 앞에 잇길래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던거다 라고 했다. 나는 너가 뒤에 오길래 이 길이 맞나보다 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서로 의지해서 걸었다니 웃겼다.
세상에 이젠 우박이 떨어졌다. 최악의 날씨에 피레네 산맥을 걷고 있었다. 걷기만 했을 뿐인데 매우 높은 곳에 내가 올라와있었다. 내가 두번째로 공포를 느낀 대상이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하나는 바람이고, 두번째는 새다. bird. 나는 새가 공포스럽다거나 무섭지 않았다. 비둘기 같은 애들은 징그럽고 그냥 싫을 뿐이었다. 근데 피레네 산맥을 올라가는 저 길에 독수리 같은 정말 큰 새가 위를 빙글 빙글 돌고 있는데, 정말 무섭더라. 새가 저렇게 클 수 있나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쓰러질때 까지 기다렸다가 날 공격 할 거 같은 생각도 문득 들면서 공포 스러웠다. 그리고 또 동시에 멋잇었다. 나는 이 강풍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눈도 제대로 못뜨고 휘청휘청 걸어 올라가는데, 저 새들은 이 강풍에도 흔들리지않고 날개를 피고 날고 있고 가만히 떠 있었다. 인간은 정말 자연 앞에는 제일 나약한 존재라는 게 느껴졌다.
비바람과 우박을 뚫고 계속해서 걷다보니 정상 같은 곳에 순례자 쉼터가 보였다. 다들 그곳에서 바람을 피해서 좀 쉬고 있었다. 나도 다른 순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가방을 내려놨다. 가방만 내려놔도 살 것 같았다. 아까 점심 먹을 때 혹시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목 말라도 먹지 못했던 물도 드디어 한 모금 먹고, 주변 사람들이 주는 포도도 먹고 경치도 감상했다. 구름이 밑에 있었고 나는 피레네 산맥 위에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던데,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갔겠지? 비바람이쳐도, 우박이 떨어져도 나도 할 수 있을거야.
가끔 폭풍, 안개, 눈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을 생각해봐.
그리고 이렇게 말해봐.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_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
이제 내리막 길만 남았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등산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따라 산을 낮이고 밤이고 다녔고, 학창 시절에는 특별활동으로 등산부도 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올라가서 정상을 찍고 내 려 갈때의 그 뿌듯함과 성취감은 정말 좋다. 그렇게 기분 좋게 경치를 감상하며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가 아닌 난 이제 스페인으로 들어왔다.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산을 다 내려오니 나의 다음 숙소인 스페인 수도원이 보였다 ! 쫄딱 젖은 몸과 옷을 빨리 가서 말리고 씻고 싶었다. 발은 이미 감각이 좀 없었다. 속으로 물집만 제발 안잡혀라 라는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시설은 어제 프랑스숙소보다 백배는 더 좋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 같은 숙소에서 잤던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여기서 놀라운 점을 눈치 채셨을까? 분명 한국인들이 제일 먼저 부지런하게 새벽 6시부터 출발했다. 근데 그 때 코골면서 자고있었던 외국 사람들이 숙소에 먼저 도착했다는 소름 돋는 사실!!
신체적 조건은 확실히 그때 느꼈다. 서양과 동양은 대결이 안된다는 걸. 그리고 또 놀라운 점은 그 아침에 같이 걸었던 스코틀랜드 남자분과 독일 여자. 난 내가 그 분들 걸음을 맞춰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독일 여자애는 심지어 이 다음 마을 까지 이미 넘어 갔다고 했고 스코틀랜드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분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이미 다 씻고 쉬고 계셨다.... 놀라웠다. 겸손해져야해...
그래도 14번째로 도착했고! 한국인 중에는 제일 처음으로 도착했다. 여자로써는 2번째! 너무 뿌듯했다.
사실 이건 전혀 경쟁이 아닌데, 경쟁만이 살아남는 한국사회에 있다 오니 나 혼자 경주를 하고 있었구나 라고 느꼈다. ‘경쟁’ 이라는 개념은 내가 순례길 걸으면서 매일매일 생각이 바뀌어 가고 변화해야 될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쟁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이겼다고 해도 그 기분 좋음은 아주 순간적이다. 사실 그게 기분 좋은건지도 잘 모르겠다.
등수 전혀 신경도 안쓰는 이 외국 친구들이 더 행복해보이니까.
그렇게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은 바로 빨래를 맡겼다. 빨래가 되는 동안 스페인 수도원에서 제공되는 순례자의 메뉴, 저녁을 먹었다.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식사가 너무 맛있었다. 한국분들도 다 모였고 다들 첫날의 경험을 나누느라 와인 한병도 나눠서 뚝딱 마셨다. 순례자의 메뉴에는 기본으로 와인이 포함되어있다. 난 이 부분을 처음엔 그냥 오예 술 먹어서 좋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루 고생하고 춥게 있다가 와인을 한잔 마시니 몸에 열이 오르면서 몸이 녹았다.
한국 귀국 후 브런치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내가 믿고 있는 부분인데, 매일 이 와인 한잔 덕분에 내가 순례길에서 한번도 감기 혹은 약을 먹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와인 최고!
밥을 다 먹고 맡겨놨던 빨래를 찾으러 갔다. 피레네 산맥이 워낙 험하니까 그 다음 마을인 이 스페인 수도원에서는 빨래서비스도 해주는 것 같았다. 왜냐면 그 이후부터는 빨래는 항상 스스로 했어야했거든..
빨래를 받으러 갔는데 너무 뽀송뽀송하게 말려있었고 예쁘게 접어서 주셨다. 너무 좋았다. 힘든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을 빨래된 내 옷으로 느끼다니. 그렇게 기분좋게 빨래를 가지고 올라와 잘 준비를 했다.
떠나기전 동생이, 누나의 순례길을 응원한다며 노스페이스에서 등산복 신상을 하나 사줬다. 그때는 솔직히 별 감흥 없었는데 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같은 상의 없었으면 난 순례길을 걷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동생에게 매우 고마웠다. 씻고 누우니 오늘 하루 몸의 피로가 한번에 왔다. 너무 으슬으슬하고 춥고 다리는 천근 만근이었다. 숙소 이곳 저곳에서 끙끙 앓는 소리들도 나고 다른 순례자들도 전부 다리를 절뚝 절뚝 거렸다.
나도 자신만만 했는데 첫날 하루 만에 다리가 너무 아팠다. 하나 겨우 친구들이 챙겨준 발에 붙이는 파스?를 붙이고 추워서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일찍 누워서 으슬으슬 떨고 있었는데, 오늘 걸으면서 많이 마주쳤던 한국 남자분이 보온병을 하나 주시면서 따뜻한 물을 넣어 놨으니 따듯하게 안고 있으라고 주셨다. 심지어 안에 라면 국물이라면서 마시란다.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