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연금술사

#6일 차

by annamood







해가 뜨기 전에 나오는 건 조금 위험하기도 하고 길을 표시하는 화살표를 찾기 좀 힘들어서, 해가 뜨고 출발했다.

슬슬 걸어 마을을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또래 분이셨고 혼자 오셨다고 하시며, 순례길 오려고 오기전 부터 한국에서 오래 걷기 연습도 하고 왔는데 무리가 간거 같다면서 무릎이 너무 아파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이 마을에서 2일 쉬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천천히 조금씩 무리하지 않고 걸으려고 짐은 동키 서비스를 맡기고 걷는 거라고 하셨다. (*동키서비스_순례자의 가방 짐을 원하는 마을로 배달해주는 서비스)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도 아프고 또 대단시다는 마음도 들면서 도와드리고 싶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정신도 없고 무릎도 아파서 사진을 한번도 찍지 못했다고 하셔서 제가 찍어드리겠다고 마을을 배경으로 순례자의 모습을 남겨드렸다. 아주머니도 고맙다며 나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퉁퉁 부은 아침 얼굴로 나도 한장 남겼다....하하..

천천히 걸음을 맞춰서 말동무도 좀 해드리다가, 아가씨 먼저 가라고 자긴 천천히 쉬엄쉬엄 갈거라고 하시며 아주머니는 멈추셨다. 순례길 그 어딘가에서 또 만날 것이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건강이 최고에요 아프지말고,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히 만나요.







오늘은 포도 밭을 실컷 보며 걸었다. 걷는 길에 블루베리와 크렌베리도 널렸다. 이제까지 너무 예쁜 풍경들을 많이 본 탓일까.. 오늘 길을 걷는데 풍경 보는 재미는 없었다. 이렇게 풍경도 볼게 없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문득 가방이 정말 너무 무겁고 다 버리고 싶어졌다. 근데 곧 날씨가 이제 추워질거 같아서 두꺼운 옷들은 버리지도 못하고.. 내가 스스로 챙겨온 내 짐인데 이렇게 원망스럽고 보기도 싫어지다니.

진짜 참 인생이란 뭘까 생각들더라. 내가 원해서 내가 갖고싶어서, 살면서 얻어왔던 것들이 알고보니 다 내 짐이 되었고 책임지기 위해 내 몸만 힘들어지고, 사실 다 버린다고 또는 포기한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뭘 위해 이렇게 낑낑대며 다 가지고 가겠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걸까

가방을 던져버렸다.



(가방 다시 주섬주섬 메고....)



이렇게 힘들게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나는 훈련하러 온거 아니고 풍경을 즐기고, 시간 제한 없이 자유의 몸으로 맘 껏 현지인 처럼 지내며 여행하려고 온건데, 어느새 한국인들 무리에 껴서 내 스스로 또 어떤 틀과 규칙과 단체에 속해져 있고.

숙소도 내 마음과는 상관 없이 사람들이 가는 곳 당연히 같이 쓰게 되고, 밥도 당연하게 같이 먹고, 다음 포인트 정해놓고 그 마을에서 만나야하고, 카톡 단톡방 만들어서 카톡하고 있고.

내가 이렇게 나를 스스로 가두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퇴사도 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로부터 떠나 이 곳 스페인, 혼자 걷는 순례길로 왔는데 이 곳에 와서도 이 짓을 하고 있다니.

정말 너무 싫었다.

그래서 오늘 과감하게 아무도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마을에 혼자 멈췄다.

누가 보면 패키지로 온줄 알정도로 한국인들끼리 무리로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좋은 것도 많다 그리고 편하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과는 달랐다. 순례자 단톡방에 전 오늘 그 곳에 가지않겠다고, 이곳에 멈추고 이곳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떨떠름하게 조금 욕도 먹으면서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내일 또 걷다가 만날 수 있겠지만 오늘은 해방이다.






그렇게 멈춘 이 작은 마을에 숙소는 단 1개. 노부부가 하셨는데, 너무 친절했다. 이층 침대는 불편했는데 여긴 다 1층 침대였고 넓었다. 짐을 대충 풀고 배가 너무 고파서 숙소 앞에 식당으로 갔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다보니 빠에야 2개, 스테이크 1개, 맥주 2개, 와인 1잔.. 식당 주인 아저씨가 날 보러 나왔다. 다 먹을 수 있냐며.

하루 온 종일 걷는데 당연히 살이 빠질 줄 알았다. 은근 기대했고 친구들도 살 많이 빠지겠다고 말했었다.

근데 왠걸, 그만큼 먹는다. 그냥 순례길 위에선 항상 배고프다.






오늘은 이렇게 일찍 걷는 걸 멈추고, 식당 테라스에서 오후를 즐겼다. 친구 아름이가 준 연금술사 책이 생각났다. 세상에, 6일 차가 됬는데 책 한장도 읽지 못했다니.

책도 읽고 성경도 읽고.

그런 나를 지나가는 수 많은 순례자들.

보고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비록 조그마한 마을이라 머무는 여행객은 나뿐 인 것 같지만 여유롭게, 남의 눈치 안보고 내가 원하는 진짜 나의 순례길을 걷는 거라고 생각하니, 행복했다.

초조해 하지 말자






"사람마다 저마다 자기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순 없어. 하지만 제각기 우리는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연금술사 중



21.32km

29966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