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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에서 거래처와 식사하기

비싼 건 맛있다

by 문간방 박씨

남미라고 해서 1년 내내 더울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중남미 출장 결정되고 나서 옷을 어떻게 챙겨가야 할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남미니까 전부 여름옷만 가져가면 되는 줄 알았다. 거래처 미팅도 있으니까 캐주얼 정장도 챙기고 이것저것 옷을 챙기다 보니 24인치 2개가 다 찼다. 미국을 경유하고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운전기사가 따라붙으니 짐 들고 다닐 걱정도 없었다. 하지만 틈날 때마다 밖에 나가서 기념품과 현지 식재료를 사다 보니 24인치 2개도 모자랐다.


그래도 공항 밖만 나서면 캐리어는 전부 기사분이 들어주셔서 매우 편했다. 평소 해외여행만 다녀오고 나면 손목과 허리가 아팠던 배낭여행과 차원이 달랐다.


돈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구나 라는 걸 이때부터 느끼고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리마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급 식당에 갔다.

나야 리마에 처음 와본 거니까 리마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식당이라고 하니 그러려니라고 생각하고 따라갔다. 그런데 정말 서울에서 5성급 호텔도 이 정도로 나올까 싶을 정도로 코스 요리가 끝도 없이 나왔다. 사람 수가 많기도 했지만 총식비만 백만 원이 넘었고, 남은 음식은 현지 직원이 싸가지고 갈 정도로 풍족하게 시켰다.


만약 한국이었으면 남은 음식 내가 싸가지고 갔을 텐데...


근데 의외로 내 또래 여직원 (그때 당시 29살)은 남은 음식을 싸 주니까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랑 2년 넘게 교신하던 친구여서 정도 많이 들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과 L 이사님은 본인 월급 가지고는 평생 오지도 못할 식당에 데리고 와서 남은 음식까지 (거의 손도 안 댄 음식들) 싸 줬는데 왜 저러냐며 한 마디씩 했다. 몇 개월 뒤 나는 페루 업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나 대신으로 업무를 맡게 된 직원과 페루 여직원은 메일로 대판 싸우고 여러 안 좋은 소문을 가진 채로 퇴사를 했다.


이 식당의 음식은 정말 맛있었는데 이 날이 내 피로도가 최고조인 날이었다. 게다가 비바람까지 불어서 짧은 스커트를 붙잡고 이 식당까지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도 힘들었다. 뒤에서 사장님이 스커트가 짧다며 혀를 차는 소리를 뒤로 한채 나는 부지런히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IMG_20140901_211216.jpg 페루는 옥수수가 풍부하다. 가재와 쌀, 감자, 계란 그리고 옥수수가 들어간 수프 같은데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IMG_20140901_211335.jpg 사진이 너무 흔들렸네. 맛있는 음식 앞에 놓고 너무 피곤했다. 오징어랑 조개 그리고 새우가 들어간 해산물 파스타와 리소토였다


거래처와 정신없이 얘기가 오고 가고 음식이 끊임없이 나와서 사진 찍다가 포기했다. 그래서 바로 디저트 사진으로...

IMG_20140901_215351.jpg 타르트와 초코가 듬뿍 들어간 디저트


IMG_20140901_215401.jpg 보기만 해도 고칼로리다. 빵에 엄청나게 달달한 초코크림과 바닐라 크림이 올라갔다


IMG_20140901_215412.jpg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인데 이때부터 배불러서 못 먹었다


IMG_20140901_215422.jpg 과일 디저트... 너무도 많은 음식에 그 날 내 위가 작은가?라는 착각을 잠깐 했다

남미에 와서 아픈 곳은 없는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걱정을 많이 해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난 잘 먹고 잘 구경하고 다녔다. 다만 차에서 내릴 때마다 노트북하고 가방을 다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게 상당히 번거로웠다. 하지만 차 안에 두는 순간 다 털린다고 하니 귀중품은 전부 들고나가야 했다.


만약 페루에 다시 가게 돼도 이 식당엔 내 돈 주고 못 가지 않을까 싶다.

자유여행으로 오게 된다면 이 식당에 가기 위해 공간이 부족한 캐리어에 드레스코드를 맞춰서 옷도 챙겨야 하고, 식사하는데만 2시간이 걸릴 테니까 시간이 돈인 자유여행객에게는 지나친 사치다.


사장님의 내 스커트 길이가 짧다는 얘기는 페루에서부터 시작해서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1절만 하고 끝내실 줄 알았는데 4절까지 하시고 도돌이표로 지겹게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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