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감흥은 다를 수 있지만, 마추픽추 한번 더 가보고 싶다...
마추픽추 별거 없네. 이거 보려고 20시간 비행기 타고 다들 오는 건가?
왜요~~ 사장님~ 마추픽추는 제 꿈이었어요!
여기를 그렇게 와보고 싶었다고? 난 한국하고 차이를 못 느껴. 치악산에 염소 풀어놓는 거랑 다를게 뭐야?
사장님은 마추픽추에서 오감으로 모든 걸 느끼고 싶었던 마추픽추에서의 나의 감흥을 산산조각을 내셨다.
홍성 살 때 토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각종 야채를 잘게 다져서 피자를 만들어 주셨다. 그 피자를 먹으면서 토요일 오후 2시에 하던 영화를 보는 게 나에게 큰 행복이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의 배경지가 페루였다.
한 소년이 시장에서 기념품을 하나 샀는데 그것이 기념품이 아니라 누가 몰래 숨겨 둔 진짜 잉카 유물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소년은 나쁜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소년은 마추픽추까지 오게 된다.
너무 오래된 영화라 제목도 내용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마추픽추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세계지도 중에서 남미 지도만 찢어서 책가방 안에 넣고 다녔다. 중학교 때는 어른이 되면 꼭 이곳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면 방학 때 남미는 갈 수 있겠지 싶었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하루 휴가도 오랜 고민을 하고 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중남미는 꿈도 못 꾸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25살에 마추픽추는 꼭 가보기라고 버킷리스트에 적었다. 중남미 여행하기!라고 적으면 너무 마음에 부담이 되니까 그중에서 가장 보고 싶은 마추픽추에 다녀오기! 이것 하나만 적었다. 마추픽추만 빼고 앞 뒤로 버킷리스트는 지워지고 있었다.
페루와 일을 하면서도 친해진 거래처 직원과 마추픽추에 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들은 마추픽추는 소풍 갈 때 여러 번 갔었다며 언제든 오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마추픽추에 가보는 게 평생의 꿈인 사람들이 많은데 너넨 소풍을 마추픽추로 가는구나...라는 괴리감도 들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한국에 와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마추픽추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지금도 나한테 많은 걸 베풀어주시는 사장님과 함께한 마추픽추가 참 좋았다. 3시간 정도 가이드를 끼고 설명을 들으며 둘러본 마추픽추에 올라섰을 때 내가 몇십 년간 꿈꿔왔던 마추픽추가 생각했던 것보단 작아서 실망을 했다. 그래도 그 앞에서만 사진을 몇 십장 찍었다. 평소 여행운도 좋은데 마추픽추에서 날씨도 매우 좋았다.
마추픽추로 가는 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 기차로 마추픽추로 향했다. 이 별 볼 일 없는 기차가 일인당 10만 원씩이다. 페루는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듯 하지만 이 수익이 전부 영국 정부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3시간 걸려서 도착한 마추픽추였다. 고산병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마추픽추를 향해 올라가는 도중 고산병으로 실려 내려오는 일본인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평소 걸음보다 한 템포 느리고 숨도 천천히 쉬면서 걸어 올라갔다.
마추픽추에 가려면 여권을 가져가야 한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마추픽추 입구에 기념도장이 있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여권에 이 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남미를 다녀온 이후 1년 뒤 러시아를 가기 위해 출국을 하다가 이 도장 하나 때문에 인천도 못 빠져나갈 뻔했다. 기념도장을 여권에 찍는 행위는 여권 훼손으로 현지에 도착했을 때 입국 금지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공사에 사정사정에서 러시아에서 입국 거절 시 항공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고 나서 러시아로 떠났다. 다행히 러시아에서 아무 문제없이 입국을 했지만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권 재발급 신청을 했다.
마추픽추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출구로 나오니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추픽추에서 쿠스코 시내로 돌아오는 내내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워낙 고지대라서 구름이 끼는 날이 많고, 비가 자주 온다고 하니 마추픽추에 가기 전에 반드시 날씨를 체크해야 한다. 나같이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야 날씨가 안 좋으면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마추픽추에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건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치악산과 마추픽추와의 차이를 전혀 모르겠다던 사장님과 쿠스코로 돌아와서 마사지도 받았다. 맛사지샵은 갑자기 들이닥친 한국사람들로 분주해졌고, 주변 동네 아줌마들까지 전부 동원돼서 우리는 마사지를 받았다. 남녀 구분도 없어서 나는 커튼 하나 사이로 남자들과 구분돼서 오일 마사지를 받았다. 민망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난데 나머지 직원들과 사장님이 더 어쩔 줄 몰라하셨다. 어색함을 없애자며 사장님은 트로트를 크게 트셨고, 나는 치악산에 올라갔다가 한국의 어느 맛사지샵에 온 듯한 기분으로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