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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09. 2020

입사 두 달 차 K가 밥 사주겠다고 한다

사적으로 만나는 거 절대 아님!!!

살면서 가슴 뛰는 일이 몇 번 있다.


혹시나 나를 두고 지나친 건 아닐까...... 조바심이 생기고,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빨라지며, 평소에는 앞만 보고 걷는 내가 좌우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순간은 바로


내가 타야 할 2*3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할 때이다


2*3번 버스는 한번 놓치면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 안은 항상 사람이 많아서 한 대 차이로 퇴근길에 서서 가느냐 앉아서 가느냐가 결정이 된다.


한 달 중 피곤함을 감수해야 하는 한 주가 바로 이번 주였다.

유난히 더웠던 오늘 2*3번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빠른 걸음을 더 서둘러서 걸었다. 버스 정류장이 50m쯤 남은 그 순간, 2*3번 버스가 코너를 돌며 빠른 속도로 정류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정류장에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피로함에 축 처진 몸으로 달렸는데도 간신히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운 좋게 빈자리는 많았고 나는 내리기 좋은 뒷문 가까운 곳에 앉았다. 몇 정거장을 가는데 따가운 햇살이 내 눈에 정통으로 들어왔다. 이러다가 실명하겠다 싶어서 나는 반대편 자리로 가기 위해 뒷자리에 있던 복도 쪽 빈 좌석을 향해 걸었다. 그 순간 내가 앉으려고 했던 옆자리에 낯익은 변발 머리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안녕하세요!!!

예에~


오늘도 K는 어김없이 내 인사 끝에 또 대답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퇴근했어요?

뭐 보낼 게 있어서 일찍 나갔다가 다시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와! 근데 또 이렇게 만나네요 하하하


나는 버스 안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그토록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엄청나게 애를 쓰고,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굴려서 우연을 가장해도 만남이 어려웠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K랑 나란히 앉아서 퇴근을 또다시 같이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K를 보고 한번 터진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오늘 브런치에 무슨 글 쓸지 글감은 너로 정했다 싶었다.


입사한 지 두 달 된 K는 업무로 고민이 많았다.

업무가 아직 서투른 게 고민이라고 말하는 K는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영락없는 신입의 모습이었다. 내 눈높이로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하니 지난번처럼 멀미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K에게 연봉은 만족하냐고 물었다.


저는 연봉도 모르고 들어왔어요.

아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럼 첫 월급 받았을 때 만족했어요?

뭐... 별생각 없었어요

그래도 본인의 최저 연봉의 기준이 있을 것 아니에요

글쎄요.... 뭐, 만족합니다. 어쨌든 전 돈 많이 벌거예요

회사에서 주는 월급은 일정한데 돈을 어떻게 많이 벌려고요?

방법은 많죠! 지금 하는 업무의 전문가가 된다거나, 회사에서 뛰어나게 역량을 떨치면 되죠. 이 회사는 가능성이 많은 회사입니다. 왜 그러냐면요......


나는 어느새 2개월 차 신입한테 우리 회사 소개와 전망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었다.


지난번부터 K는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참 어렵다고 했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 자전거 동호회도 알아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내 상황에 내가 뭐라 조언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선호하는 여성 스타일이 있어요?

마인드가 저랑 비슷하고, 직업이 확실해서 돈 잘 버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아니 본인이 앞으로 돈 많이 벌거라면서요? 그럼 와이프가 굳이 돈 벌어야 하나요? 가정주부로 살면서 아이들 잘 키우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저희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셨는데, 그걸 봐와서 그런지 어머니도 돈 버는 게 좋더라고요 허허허


여자의 직감상 K도 결혼은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K는 입버릇인지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이라는 얘기를 서두에 항상 붙였다. 나는 들은 기억이 없는데 정말 K가 지난번에 얘기한 것을 내가 또 물어본 것인가 헷갈렸다. 그래도 K는 부산 사투리가 살짝 섞인 억양으로 내가 묻는 말에 전부 빠른 속도로 대답을 했다.


놀랍게도 K는 S대 법대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잡지식은 끊임없이 나왔다. 게다가 앞으로의 사회 전망이나 뉴스에 나오는 분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것을 마치 옆집 아저씨를 소개하듯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나는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K에게 조언을 해줬다.

 

차라리 회사를 다니지 말고 너투브를 해봐요. 여기보다 훨씬 더 돈 많이 벌지도 몰라요


K는 고시 공부하느라고 운전대를 놓은 지 너무 오래돼서 퇴근 후 운전연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고 K는 연수를 받으러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갔다.


나는 K에게 지난번처럼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1층에서 자본주의에 반하는 햄버거나 사 먹지 말고 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언제든 같이 맛있는 점심 먹자고 얘기를 했다.


네, 좋습니다. 언제 맛있는 밥 먹어요. 제가 사드릴게요

K 씨가 사겠다고요? 내가 K 씨 사수보다 3년 선배예요. 밥은 선배가 사야죠

에이 그래도...... (엄청 머뭇거렸다) 제가 나이가 더 많은데, 밥은 나이 많은 사람이 사야죠

하하, 편할 대로 해요


오늘같이 무더운 33도의 날씨에도 K는 긴팔 와이셔츠를 입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K는 운전이 서툴러서 사수와 외근을 나갈 때마다 사수가 빨리 운전을 배우라고 갈구는 듯했다.


집에 오는 길은 편안했다.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도 하고, 브런치 글도 읽고, 오늘의 뉴스 속보도 검색해서 읽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나는 현관문 앞에 섰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체크카드를 꺼내서 현관문 앞에 갖다 대고 있었다.


현관문은 번호를 직접 누르거나 지문으로 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뿐이다. 한 번도 카드를 사용한 적도 없는데 나는 내가 왜 체크카드를 꺼내서 현관문에다가 대고 있었는지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K를 만나고 나서 두 번째로 정신줄을 놓았다. 단순히 우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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