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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11. 2020

그래도 나는 서울을 사랑해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하룻밤 사이에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와 등산로가 부정적인 뉴스와 기사로 뒤덮여버렸다. 동네 이름과 산 이름만 검색창에 쳐도 밝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기사들만 가득하다. 올해는 그쪽 방향으로는 등산도 삼가야겠다.


그래도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서울이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20대를 서울에서 보냈다. 대학생일 때는 종로에 있던 한 어학원에서 청계천 공사 소음을 들으며 여름방학을 보냈다. 청계천이 완성되고 나서는 생활이 조금은 안정된 직장인의 모습으로 새로운 친구와 손을 잡고 청계천을 걸었다. 외부 회의나 외근을 일찍 마치고 나면 시청 앞 광장에 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잔디에 앉아서 음악회를 감상한 적도 있었다. 서울에 한번 왔다 간 몇몇 해외 거래처분들이 서울을 다시 보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재방문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오늘은 지난달부터 예정에 있었던 회의가 시청역 근처에서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일부러 시청 앞으로 걸어 나왔다. 시청 앞 광장에 있는 I SEOUL YOU의 간판이 유난히 어울리지 않는 오늘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취재진들이 천막을 치고 있었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인지 평소보다 순찰차도 많았다. 그때 콜롬비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콜롬비아 뉴스에까지 한국의 소식이 전달됐다고 한다. 나에게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스페인어 학원을 다녔을 때나 그 어떤 스페인어 책에서도 절대 보지 못했던 그 단어를 스페인어로 정확히 찾아서 콜롬비아 친구에게 설명해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스페인어 반, 영어 반을 섞어서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친구는 긴 대답 대신 나에게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그 이모티콘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느끼고 있을 그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비겁한 사람에게 무슨 칭호가 필요한가?

뉴스에서 하루 종일 방송되는 그 사람의 지금까지의 행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그 사람은 처벌을 피했지만 과연 이 국가가 앞으로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 및 처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구상중인가이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와 유사한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와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 계획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그 사람이 과거부터 부르짖었던 인권은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전 국민이 알게 됐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억울함을 밝혀줄 국가적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에 따른 성숙한 언론의 모습도 보고 싶다.


미투 운동의 의의는 원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한국 사회가 인지하게 했다는 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소속되어 있는 권력 구조와 조직의 문화 그리고 규범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통해 대한민국 내의 조직에 성찰과 변화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해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계와 생존이 어렵고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이듯이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대로 배려해 주지 못하는 문제는 과거와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자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가운 시선 그리고 불안은 엄청날 것이다. 더욱이 가해자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피해자가 겪은 그 고통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평생 동안 엄청난 고통과 부담 속에서 살아나가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피해자를 위한 피해 구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오늘도 관련 기사 밑에 쏟아지던 피해자를 향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2차 가해를 보고 언제까지 이렇게 역겨운 감정 소모전을 펼쳐야 할지 의문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10년 이상 살았던 서울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보여주기 식의 성장이었고 정치나 국민성은 오히려 정체되거나 후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설마 10년 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이제는 가해자에 대한 관심은 끄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내 세금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위해 쓰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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