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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04. 2020

별 것 아닌 꿈이 자꾸 신경 쓰인다

5천 원에 사주팔자 보고 온 이야기

강동구에 있는 상일초등학교에 얼굴도 모르는 내 딸을 학교에 데려다준 꿈을 꾼 후로 나는 상당히 불편하게 지내고 있다.


강동이나 천호를 지나갈 때마다 꿈이 생각이 난다.

평소에 꿈을 잘 꾸는 편이라서 아직도 내가 키 크려나 싶었는데, 이번 꿈은 나를 상당히 신경 쓰이게 한다. 지난주에 천호 현백 꼭대기층 식당가에서 거래처 사람들하고 점심을 먹었다. 평소에 나라면 거래처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하면서 풍납토성도 보고 한강도 바라보면서 음식 인증샷 찍고 그 분위기를 즐기면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평일에 천호 현백에 쇼핑이나 점심을 먹으러 온 내 또래 여자들의 옷차림이나 생활수준 그리고 동네 분위기를 살폈다.


점심만 먹고 나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주말에 천호에 와서 살기에 어떤지 천천히 둘러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나는 무더위를 뚫고 지하철을 타고 천호역으로 왔다. 현백 꼭대기층에서 항상 내려다만 봤던 풍납토성을 오늘은 지나치지 못하고 한 바퀴 둘러봤다. 천호 중심가와는 달리 30년도 더 된 오래된 주택과 전통 시장이 있었다. 풍납토성을 따라 걷는 길은 참 예뻤다. 햇살이 무지하게 따가웠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풍납토성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곳곳에 있는 설명들을 읽는 게 참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시장 골목길에 사주풀이를 하는 곳을 지나갔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사주풀이에 5천 원을 써놔서 싼값에 한번 볼까?라는 생각에 계획도 없이 들어갔다. 테이블은 두 개가 있었고 한 여자분은 이미 손금을 보고 있었다. 나는 빈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쪽으로 갔다. 전직 중이셨는지 책상 위에는 오래된 염주가 있었다.


나는 내 사주팔자를 이미 안다.

관사에 살 때 사주풀이를 어디서 배워오셔서 친한 사람에게 재미로 사주를 풀어주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그때 엄마는 그 아주머니께 고등학생과 중학생이었던 오빠랑 나에 대한 사주를 이미 보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점집에 한번 찾아갔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소사원 1년 차도 안됐을 때 나는 마음이 만신창이가 돼서 KTX를 타고 부모님이 계신 I로 내려왔다. 그때는 부모님께서 관사에서 나와서 I 중심가에 있던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직후였다. 부모님 집에 오자마자 나는 손만 씻고 부모님의 큰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잠만 잤다. 나는 사실 부모님께 회사가 너무 지랄 같아서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선포를 하려고 내려온 거였다. 서울살이 5년 차에 처음으로 I에 내려왔는데 I는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I는 동네가 매우 조용하고 서울에서보다 3배는 시간이 더 천천히 가는 것 같았다. 부모님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차라리 몸도 마음도 편하게 여기서 직장을 잡아서 살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내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렀고 아빠의 베갯잇을 살짝 적셨다. 남의 돈 받아먹는데 너무 힘들다는 생각 그리고 내 또래는 자아를 찾겠다고 해외여행 중인데 나는 왜 벌써 일을 시작했는가?라는 아빠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뒤에 무수히 많았던 점집이 생각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엄마께 점집에 가서 회사를 다닐지 말지 결정하고 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헛소리 말고 집에 있어라. 그런 곳은 여자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라고 하셨지만 나는 저녁 먹기 전까지는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지갑을 들고나갔다. 결국 엄마는 나를 따라서 뛰쳐나오셨다. 나는 만약 점집에서 이 회사가 나랑 맞으니 계속 다니라고 한다면 앞으로 군소리하지 않고 다니겠다고 버스 안에서 엄마께 말씀드렸다. 엄마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현금을 찾으셨고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같이 점집에 가서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를 묻고 나왔다.




10년 만에 무당은 아니지만 사주 풀이하는 대머리 할아버지 앞에 나는 자리를 잡았다.

딱히 뭘 물어보고 싶은 게 없었다. 앉았다가 바로 그냥 다시 나갈까?라는 고민을 잠깐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일초등학교 꿈이 또 생각이 나서 그냥 5천 원은 커피값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었다. 그리고, 책을 뒤적거리시더니 첫마디가 올해나 내년 안에는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내가 미혼인지 기혼인지 얘기도 안 했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딸만 둘을 낳을 것이고 순산을 한다고 했다. (관상에 손금까지 봐주셨다) 그런데 하필 할아버지께서 딸을 언급을 하시니 그 꿈 생각이 났다. 10년 전의 나는 회사 관련된 이야기나 해외로의 이직을 무당 할머니께 물어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으로의 내 재물운에 대해서 물어봤다. 내 사주로는 다행히 집이나 돈은 걱정할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궁합은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왜요?

당신이 너무 쎄. 남자 사주야. 남자로 태어났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런가요? 여자로서 세상살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단단해지는 거 같아요......

아니야, 당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강했어

그럼 혹시 궁합을 안 봐도 되는 나이 차이가 있나요?


뭐, 내가 남자 사주라는 말은 지난 두 번의 상담(?)에서도 이미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래도 단돈 5천 원에 딸 두 명에 순산하고, 경제력이나 집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데 자식복까지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정신과 상담은 받아보지 않았지만 정신과 상담이 별 게 있나 싶었다. 내가 듣기 좋은 얘기 듣고 마음 편안하면 그게 장땡이지 싶다.


할아버지께 돈을 드리고 나서 나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했다.

사주가 100%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에 미리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천호를 둘러보다가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한강 공원이 나왔다. 한강을 따라 걸으니 사람들이 왜 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갔다. 우리나라 한강은 참 예쁘다. 밥 먹고 한강으로 산책을 나와도 되고,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자전거도 탈 수 있는 한강공원이 참 좋아 보였다.


지난달에 희한하게 나를 신경 쓰이는 꿈 하나로 천호에 왔다가 사주를 보게 되고 이제는 내 집 마련의 고민을 정말 진지하게 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어떻게든 떠나서 살고 싶었다. (해외에 왔다 갔다는 많이 해도 아예 거주하는 사주는 아니라고 한다. 뭐, 그 팔자가 따로 있다나? 그런데 요즘 같은 시국에는 한국이 살기에는 최고구나 싶다. 집에 마스크도 많고 하니......) 한강을 따라서 걷다 보니 작년 일을 생각나게 하는 장소도 지나고 결국 나는 잠실까지 왔다. 잠실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산다. 평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새삼 그 사람들과 내가 비교가 됐다. 그 와중에 나는 아빠로부터 카톡을 하나 받았다.


어떻게 해야 강동구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 잘해보고 오세요~

고민은 많이 했고요, 아무래도 아빠가 저를 많이 도와주셔야 할 거 같아요!

  

그 후로 아빠에게서 카톡 답은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고민을 너무 하지는 않기로 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M한테 퇴근하고 스타필드 가자고 꼬셔야겠다. 놀고 싶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더 미루지 말고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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