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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04. 2020

한 주 목표 설정하기

내 주제를 스스로 알기가 어렵네

나는 회사에서 나만의 주간보고서를 작성한다.


신입 때 너무 많은 업무량에 허우적대던 나는 업무를 종종 빠뜨리기 일쑤였다. 일이 너무 많아서 퇴근도 못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내일 회의를 한다고 본인의 회의 자료까지 나에게 던져놓고 본인은 퇴근을 하는 상사가 있었다.


내 회의 자료는 아직 주제도 못 정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텅텅 빈 지하철 안에서 나는 뜨끈뜨끈해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빨리 퇴근을 할까?


서툴렀던 업무와 관련된 영어 문장은 통째로 외우고, 영타는 좀 더 속도를 높일 수 있게 연습했다. 그리고 업무를 빠뜨려서 퇴근 후에 집에 와서도 그 업무가 생각나지 않고 윗선에서 전화 오지 않도록 나만을 위한 업무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래서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엑셀로 된 업무보고서 세 가지가 있다.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스타일이다. 업무보고서 1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 2를 켜서 다시 확인하고 퇴근 직전에 3을 켜서 최종 정리를 한다. 금요일 퇴근 직전에는 세 가지 파일을 출력해서 업무 파일함에 끼워 넣는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이 일을 나는 한 주도 빼먹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는 직장인으로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주간 계획서도 만들어서 생활하고 있다. 처음엔 서툴러서 빈 공간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은 어떤 운동을 했는지, 몇 보를 걸었는지, 무슨 공부를 했고 기억에 남는 음식까지 전부 적고 있다. 무엇보다 주간 계획의 맨 윗부분 공간에는 그 주의 목표를 적는다. 보통 "영어뉴스 회독하기", "강경화 장관 인터뷰 정리하기", "스페인어 복습하기"와 같은 공부가 주된 거였다. 그러나 다음 주 목표는 "나를 사랑하기"로 적었다.


나는 이미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나 주변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나는 오히려 과하게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내 공간에서 좋아하는 수집품과 함께 큰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다음 주 목표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적고 나니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나 자신을 어떻게 더 사랑해야 할까?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자기애의 반만 이성에게 줬었더라면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까? 자기애가 너무 넘쳐서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뭇 주는 게 아닐까?


지난달 Y와 서점에 갔을 때 Y는 노트를 한 권 샀다. 지금보다 더 계획성 있게 살기 위해서 1년 치 계획을 세울 거라고 했다.


내가 회사에서 되게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거든? 근데 너는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시험 봤어도 충분히 합격했을 거 같아.

음...... 사실 저도 좀 후회되긴 해요. 근데 그때는 시기나 조건이 전부 맞았었어요

야, 여기 5년 치 계획 노트도 있다. 이걸 차라리 써봐


 업무계획서가 나의 사적인 주간 계획서보다 쓰기가 훨씬 쉬웠다. 내가 하는 일이 변수가 많은 일이긴 해도 거의 모두 통제가 가능한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나 자신을 위한 계획서를 만드는 일에 이렇게 버벅될 줄은 몰랐다. Y가 쓰는 주간 계획서를 살짝 훔쳐보고 싶기도 하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 노트 빌려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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