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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07. 2020

초능력을 할 줄 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

회장님 흉을 너무 많이 봤나?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돈 빼고 다 싫었다.

그래도 3년은 넘겨야 했다.

3년 미만의 경력으로 이직을 하면 나는 또다시 소사원에, 나이 어린 막내로 모든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25살이 되기 하루 전, 12월 31일에 종무식을 마치고 나는 현금 100만 원이 든 봉투를 사장님으로부터 받았다. 12월 30일까지 밤늦도록 일 하느라고 인센티브가 있다는 소식을 전혀 전해 듣지 못한 나로서는 정말 깜짝 선물이었다. 아마 회사에 입사해서 가장 환하게 웃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5만 원짜리로 채워진 100만 원이라서 봉투 두께는 매우 얇았지만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1월 1일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 12월 31일에 나는 일을 빨리 마치고 평소보다 일찍 용산역으로 향했다. 첫 월급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직전까지 나에게 용돈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3만 원씩 주셨던 외삼촌께 전부 드렸다. (외삼촌은 그 돈을 받고 몇 달 뒤에 내가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서 먹고 자고 관광할 수 있는 기회로 되돌려주셨다) 그리고, 이번에 받은 현금 100만 원은 엄마께 드리려고 마음먹었다.


용산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모든 사람이 내가 현금 100만 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했다. 용산역에서는 KTX를 타기 전에 1시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식당에 들어가서 밥도 먹지 않았다. 사실 밥값이 아까웠다. 그리고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가슴속에 있던 100만 원으로 내 배는 충분히 불렀다. KTX 안에서도 돈을 도둑맞을까 봐서 한숨도 자지 않았다. 물론, 그 돈을 받자마자 내 체크카드에 입금시킨 후에 I에 도착해서 현금으로 뽑아서 100만 원을 엄마께 드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장님이 주신 빳빳한 새 돈 100만 원을 그대로 엄마께 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100만 원을 받고 한참을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까맣게 타들어가 있던 내 속도 모르고


너는 지금 참 좋은 회사 다니니까 여기서 최선을 다해서 오래오래 일을 해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해가 흘렀다.

2년 차 소사원이 되자 어디서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 드문드문 이직을 제안하는 연락이 국내와 해외에서 왔다. 현재 회사보다 규모는 작아도 집에서 가깝고, 사대문 안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렸던 나로서는 엄청나게 흥분되던 일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카페나 식당 그리고 학원 강사와 같은 알바를 해보려고 해도 전부 거절당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카페 알바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하지만, 나는 고작 2년의 경력으로 다른 회사에 가서 다시 1년 차 소사원으로 지내는 게 싫었다.


시간은 또 쏜살같이 흘러서 나는 3년 차 소사원이 됐다. 3년 차였는데도 밑에 직원이 들어오면 얼마 버티질 못하고 전부 그만뒀다. 나보다 나이 많았던 언니 오빠들이 들어와서 내가 막내 일을 계속했었는데도 그들은 퇴사 사유에 불만을 잔뜩 늘어놓으며 1년을 겨우 버틴 후에 퇴직금을 챙겨서 매몰차게 떠났다.


4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시무식을 하러 서울이 아닌 어느 지방의 공장으로 참석을 해야 했다. 시무식 전날에 M은 나에게 그 공장까지 가려면 지하철 첫 차를 타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했다. 나는 새벽 6시 전에 지하철을 타고 본사에 와서 다른 직원의 차를 타고 공장으로 갔다. 공장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고 1시간의 시무식을 마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다시 밀린 일을 시작했다. 오전 시간이 훅 날아가버렸기 때문에 오후에는 일어설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해외 거래처에서 온 Happy new year 이메일에 대한 내 마음을 담은 회신은 그다음 날 하기 위해서 전부 미뤄두었다. 업무를 겨우 마무리하고 오후 6시에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인사팀 팀장이 직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회장님의 말씀이 있을 예정이니 회의실로 모이라는 거였다.




나는 회장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장님은 건강을 엄청 챙기신다. 그래서 건강기능식품과 관련하여 관심이 엄청나게 많으시고, 그와 관련되어 벌린 일도 많다. 하지만 제대로 매출이 된 건 하나도 없었다. 본인이 기획해서 본인이 좋다고 떠들고 다니고 본인이 그 제품을 먹고 다녔다. (직원들한테는 사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먹고 다녔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내 돈 내고 그 제품들을 사 먹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 것이라고 하니 믿음이 더 가질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신설되었던 그 부서가 바로 내 옆자리에 있었는데 오빠들이 샘플이 나오면 조금씩 나한테 챙겨줬다.


가끔 임원실에 가면 회장님 방에 블라인드가 쳐져있고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회장님이 미친 듯이 왔다 갔다 거리며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서 언니한테 왜 저러시냐고 물으니 회장님은 하루에 만보를 채우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거의 저런 모습이라고 했다.


회장님은 작가가 꿈이셔서 책도 몇 권 냈는데 싸구려 표지에 몇 장 안 되는 책을 지인한테 비싼 값으로 인쇄를 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셨다. 그리고 회사 다니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며 퇴근할 때 인사는 "집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라고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회사에 대한 반발심이 더 극에 달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우리의 퇴근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서 앉아계셨다.

한 30분 간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을 서둘러서 마치느라고 머릿속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장님 본인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본인이 S대에 입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와 S대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특이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얘기를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과장 이상 직급들은 다들 멀리 떨어져서 앉아 있었고 대리 이하들은 어쩔 수 없이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본인은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눈으로 한번 훑기만 해도 머릿속에 모든 내용이 기억이 된다고 했다. 대학 시절에도 시험 보기 하루 전에 책을 보면 전부 암기가 돼서 그다음 날 시험을 보면 한 문제도 버벅대지 않고 전부 서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과장급 이상들은 이 얘기를 이미 들어왔던 것 같은 눈치였다. 노련한 추임새와 끄덕임 그리고 적당하게 소리 내어 웃음으로서 회장님의 기분을 잘 맞춰드리고 있었다.


나는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저녁도 못 먹었고, 그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회장님 바람대로 "집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를 인사해야 할 판이었다.


사장님은 초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본인 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아무나 나와서 아무 숫자를 써 보라고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회장님은 그의 특유의 웃음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용기를 내서 나와서 써 보라고 다그치셨다. 나는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모든 직원들이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숫자 "18"을 화이트보드에 크게 써서 회장님께 맞춰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나보다 5년을 이 회사에서 더 다녔던 대선배님 M이 이제 곧 말씀이 끝날 거라는 카톡을 나한테 보냈다. M의 카톡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참을 수 있었다. M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회장님이 이 회사 말아먹는 거 아니냐! 우리 빨리 다른 데 알아보자고 꼬셨다. 그 후로도 회장님의 못 말리는 행사나 지침이 몇 번 더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조직이 점점 더 커가면서 지금의 나는 회장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됐다. 


어렴풋이 들리는 회장님의 자산은 주식만 해도 몇 백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원한다고 퇴근 직전의 직원들을 전부 불러 모을 만큼 회사에서의 위치는 막강하지 않다. 그때는 몰랐는데 회사를 이끌어가고 성장시키는 것은 초능력만 빼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본인들이 맡은 일이었던 몇몇 임원들과 그 이하 직원들이었다.


취직도 어렵지만 퇴사도 어렵다.

3년을 못 채우고 퇴사를 하는 나보다 몇 살 어린 한 친구를 보니 새삼스레 과거 일이 생각이 났다. 그 친구의 나이였을 때 내가 소대리였으니 그리 어린 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첫 퇴사를 앞두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가 보다. 진급을 하면서 이직을 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테지만, 워낙 똘똘한 친구라서 잘 알아보고 결정을 내렸을 거라 생각이 들어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3년을 목표로 버텼던 과거의 나와 그 친구를 나란히 놓고 생각을 해 보니 3년이라는 숫자가 우리 인생에서 그리 중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다가올 그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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