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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24. 2020

여행은 결국 취소했다

굿바이 런던

올해 초는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큰 변화와 그에 따른 위기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최악의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 회사에 불평불만을 공식적으로 해본 적 없는 나는 처음으로 사장님과 면담을 했다. 하지만, 사장님도 해결할 수 없다고 다. 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조직이었고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너무 얽혀 있었다. 그분은 나를 다독거리면서 본인이 달동네에 살면서 힘들었던 시절의 말씀과 사원이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오랜 시간 말씀하셨다. 나는 크게 공감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잘 들어 드리려고 노력했다.


면담하느라 내 귀한 시간만 낭비했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어서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사장님과의 면담을 아주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 중에서 새겨들을 만한 것 두 가지는 가슴속에 새기고 사장님 방을 빠져나왔다.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불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나는 예상치 못하게 보너스 두 가지를 챙겨 받았다.


첫 번째는 현금을 받았다.

중국 법인장님이 역병 사태로 계획에도 없이 한국으로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꼬깃꼬깃한 현금을 꺼내서 용돈으로 쓰라고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작년 12월에 중국법인 명의 변경을 하는데 내가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업무 처리를 도와드렸던 것에 대해 고맙다는 표시를 하셨던 거다. 대륙의 스케일인지 현금을 직접 주시니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어른이 될수록 현금을 선호하는구나 싶었다.


두 번째로는 항공권 비용을 받았다.

업무 중에 갑자기 나는 사장실로 호출됐다. 그곳에서 나는 뜬금없이 올해 안에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갔다 오라는 말을 들었다. 사장님은 항공권 2장 정도의 금액을 정산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 비용 안에서라면 일본이나 중국은 비즈니스를 탈 수 있었고, 유럽은 이코노미로도 충분히 갔다가 올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는 그날로 바로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9월 28일에 출발하는 영국항공 직항을 결제했다.


영국은 이미 두 번을 방문했다. 지하철 한번 타는 데 티켓 비용이 8천 원으로 물가가 엄청 비싼 곳, 바로 영국이다. 하지만 런던 지하철 역 안 스피커에서 들리는 영국식 억양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나는 영국이 좋다. 이번 기회에 런던 교외를 좀 더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었다. 10일의 일정으로 항공권을 끊어 놓으니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1월에 필리핀을 다녀온 후 2주 뒤 바로 출국이 금지당한 상황에서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9월 말까지 7개월이 더 남아있었고 그 당시의 나는 코로나는 독감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잠해질 것만 같았던 역병은 나의 일상 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의 헬스장과 골프장, 독서실, 시니어스 클럽 그리고 샤워실까지 전부 폐쇄가 됐다.


역병의 창궐 속에서도 나는 회사에서 꾸준히 지급되던 마스크로 지금까지 무탈하게 버틸 수 있었고, 생계도 착실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나의 차분한 일상생활과는 달리 내가 지금까지 방문했던 국가들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서는 뉴스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 영국이 코로나 확진자가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는 계속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공사에 들어가 보니 작년에 매일 운항하던 영국항공은 주 2항 차로 단축됐다. 이 상황대로라면 내가 예약한 비행기도 결항이 될 것은 분명했다.


이제 과거와 같은 해외여행은 불가능하겠구나


회사에 다니는 11년의 세월 동안 매년 두 차례씩 해외여행을 했던 그 경험은 더욱더 소중해졌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이와 같은 휴가를 갈 수 없게 되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회사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다들 한 번씩 묻는다.


올해는 아무 데도 못 나가서 어떡하냐고......


의외로 나는 덤덤하다. 이번 기회에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리는 대신 국내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은 단순히 퇴근 후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역병으로부터의 안전과 사생활 보전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예약제로 재개장을 하면서 훨씬 더 아늑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관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년에 두 번씩 해외로 떠나면서 떠나기 5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우는 재미와 여행지에 대한 기대는 꽤나 컸고 그것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해외여행이 없었다면 나는 이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 말고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누구도 본인들을 찾지 않을 도피처를 꿈꾼다. 힘들게 번 돈으로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현지에서 이색적인 기념품들을 사 모으는 재미로 하루를 버티고 또 그다음 날을 버틴다.


7월이 되었을 때 나는 틈만 나면 항공사에 들어갔다. 주 2항 차 운행이니 이제 슬슬 100% 환불을 위해서 여행사에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대로 아침에 고구마와 커피를 마시던 나는 뉴스를 보다가 목이 꽉 막혔다. 영국에서는 코로나 제한을 풀어서 이전처럼 관광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프라하에서는 한국인 입국 제한은 풀어버렸다.


골치가 아팠다. 먼저 내 돈으로 항공권을 결제했기 때문에 만약 9월 28일에 비행기가 운항을 한다면 나는 취소수수료로 30만 원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어보니 주 2항 차 운행이었던 항공 스케줄은 이제 주 5항 운행으로 늘어났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 30만 원 위약금을 물더라도 항공권을 취소하자. 그리고 어떻게든 열일해서 30만 원을 더 벌자 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여행사로부터 뜻밖의 공지를 받았다.  

내가 예약해 둔 9월 28일 자 영국항공이 결항이 되면서 나는 100% 환불을 받게 됐다. 이 연락을 받자마자 내 어깨는 30만 원어치 짐이 덜어진 기분이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집안 정리를 틈틈이 한다. 올해 1월에 면세점에서 사뒀던 화장품과 딸려 있던 샘플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쓰면서 곧 이사 간다는 기분으로 새롭게 집 정리를 한다. 어제 외근 나가는 길에 잠깐 은행에 가서 일을 보려고 통장을 보던 중에 작년 10월 말에 리장을 다녀온 후 남은 돈 7,058위안 (대략 120만 원)이 눈에 띄었다. 잘 정리를 해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돈이었다. 비상금을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걸까?


지금은 중국 환율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환전을 해야겠다.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는 해외여행을 위해 외화를 집에 가지고 있는 게 절대 나에게 이득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종종 바뀐다. 이미 영국, 필리핀 그리고 중국 화폐가 변경이 됐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는 환전이 불가능하고 현지에 가서야 환전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현지에서도 환전을 잘 안 해준다고 한다)


항공권을 환불받으면 영국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비슷한 장소에 가서 다소 호화스럽게 쉬다가 오는 것도 계획 중이다.


비용 관련해서는 상무님과 얘기를 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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