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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30. 2020

크림브렐레 먹은 지 벌써 1년

맛있는 크림브렐레 파는 곳 어디 없나?

나는 크림브렐레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곳을 알고 있다.


처음 O를 만난 것은 건대 근처에 위치한 한 프랑스 음식점이었다. 건대에 이런 고급 식당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로 놀라웠고, 프랑스 식당 안에 들어가서 메뉴판에 쓰여 있던 가격을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 메뉴판을 보고 단품으로 눈을 돌린 나에게 O는 가격은 신경 쓰지 말라며 본인이 알아서 가장 비싼 코스 요리를 시켰다.


지하에 있던 프랑스 식당 안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치 내가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예쁜 장소였다. 빈티지 그릇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리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 반짝이던 촛불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초면에 실례인 줄은 알지만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와는 달리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O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프랑스를 좋아하시나 봐요?

아뇨, 프랑스 안 가봤어요


그때는 몰랐다. O가 해외를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예약제로만 운영이 되던 프랑스 식당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O를 위해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식당에서 나는 지금까지 먹었던 가장 맛있는 크림브렐레를 먹었고, 지금까지도 그 정도 수준의 크림브렐레는 찾지 못했다.


그다음 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M에게 그 프랑스 식당에 대해 얘기를 했다. 건대 근처에 살고 있던 M은 내 이야기를 듣고 크림브렐레를 먹으러 그 식당에 예약을 했다. 하지만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그 전날 대판 싸움을 하고 결국 가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O는 이미 계산을 끝내고 내 핸드폰을 들고 식당 문 앞에 서 있었다. 꿈만 같았던 프랑스 식당에서 나와서 O는 조금 걷자고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이라 나는 내일 출근이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나도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웠다. 우리는 건대 안에 있던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일을 한 지 3년이 되어가던 O는 본인의 일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나에게 얘기를 했다. 나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던 O의 거의 모든 얘기는 퍽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들으며 웃던 나에게 O는 내가 재밌으면 됐다고 말을 했다.


나와 동갑인 줄 알았던 O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였다. 하지만 서로 알아갈수록 O가 나보다 한참 어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3년 차였을 때의 그 힘듦을 O는 이제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를 하면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을 O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종종 시청 앞 광장에 있는 "I SEOUL U"의 "I"간판에 살짝 걸터앉아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O는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내 표정을 O 역시도 쉽게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O는 내가 소사원이었을 때만큼이나 본인의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이직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과감히 실천에 옮기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남동에 있는 분위기 좋은 한 루프탑 카페에서도 O는 답답한 많은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정작 본인이 실행하지도 못하는 일들에 대해서 주저리 늘어놓는 것에 대해 너무 피곤함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프랑스 식당에 가서 즉석에서 토치로 만들어주던 바닐라 빈이 가득했던 크림브렐레를 먹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무수히 많은 카페에 갈 때마다 나는 플랫화이트를 주문한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 나는 그 카페에서 크림브렐레를 판다면 꼭 맛을 본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크림브렐레의 윗부분을 톡톡 쳐서 먹던 그 맛을 흉내 낼 줄 아는 곳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과거에 플랫화이트를 오스트리아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서울의 어느 카페에 가서도 정말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쉽게 마실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기다려보려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고급진 크림브렐레를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압구정 어느 카페에서 마신 플랫화이트다. 이제는 오스트리아보다 한국에서 마시는 플랫 화이트가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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