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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ug 01. 2020

올해 첫 전시회 방문 후기

세상에는 손재주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코엑스에서 하는 전시회에 돈을 내고 들어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회사에서 친한 이사님들이나 가까운 공방 사장님으로부터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 티켓을 받는다. 작년에는 O와 전시회에 갔었다. 내가 회사를 고르던 기준은 주 5일 근무가 필수조건이었는데 O는 토요일에도 가끔은 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 전시회는 4일간 열린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나같이 꼼꼼히 보는 사람들은 2~3시간은 머무르며 시식도 하고, 체험도 해본다. 하지만 작년에는 O가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티켓을 주신 공방 사장님께 잠깐 얼굴만 비추고 30분 만에 그 전시회를 빠져나와야 했다.


그 전시회에서 O는 나에게 갖고 싶은 거 하나를 얘기해 보라고 했다. 뭐든 사주겠다고 했지만 O는 나를 만난 지 며칠 안돼서 본인의 세후 월급을 나에게 얘기했다. 물론 그쪽 회사에서 본인이 얼마 받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편하게 생각했는지 본인의 가족 그리고 경제생활까지 나에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나는 O가 작은 팔찌라도 돈을 쓰는 것이 퍽 불편했다. 


가끔씩 결제할 때 '할부로 하시겠어요?'라는 말은 들어봤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것은 O를 통해서 처음 들었고, 집에 가는 길에 그 통장의 개념에 대해서 찾아보고 알게 됐다. 일이나 돈 관리 관련해서 복잡한 거 싫어하는 나는 바로바로 돈이 빠져나가는 체크카드가 내 통제 범위 안에 들고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런 내가 플러스 통장도 아닌 부정적인 어감이 강한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아무튼 O가 마이너스 통장 얘기를 꺼낸 후에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크림브렐레도 O에게 빚이 된 것 같았다. O는 그 전시회에 머무는 동안 나보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나도 모르는 빚이 생길 것 같아서 차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작년에 아쉬움이 가득했던 전시회를 올해는 아무 부담 없이 입장했다. 역병의 여파로 작년보다 전시회의 규모는 작았다. 또한, 사전 예약을 하고 입장 시 비닐장갑을 착용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좀 더 있었다. 하지만, 항상 사람 많은 전시회에 갔다 오면 감기에 걸렸던 나는 나 말고도 다 같이 마스크를 쓰는 환경이 좋았다.


회사원으로 11년 간 살면서 자영업에 대한 로망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먹고 살 정도로 뛰어나게 잘할 줄 아는 특기가 없고 천성이 게으른 나는 자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벗어날 생각은 없다.


매달 동일한 날짜에 받는 월급에 빨간 날은 쉬는 날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는 오늘 하루만큼은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왔다. 수제로 만든 모든 것을 보고 만져볼 수 있었던 전시회장 안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니니 어느새 만보기에 8 천보가 조금 넘게 찍혔다. 오늘은 마음에 맞는 친구와 전시회장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할 줄 모르는 손뜨개질 작품들과 수제 쨈, 쿠키, 천 마스크 그리고 빈티지한 옷 등 정말 다양한 상품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내 지인인 공방 사장님께 가서 수제비누와 샴푸 그리고 주말에 먹을 수제 쨈 등을 샀다. 처음 전시회 입장할 땐 핸드폰에 카드 한 장만 달랑 가지고 들어왔었는데 나갈 때는 두 손 가득 묵직하게 뭔가를 잔뜩 들고 나왔다. 항상 그렇듯이 소비는 내 합리화이다. 나는 딱 필요한 것만 샀고, 서비스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오늘 하루의 지출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집에 와서 가계부를 써 보니 7월 달 지출 중 최고로 돈을 많이 쓴 날이라 조금 뜨끔하긴 했다.


점심은 굶고 돌아다녀서 점심 겸 저녁으로 중동 음식점에 갔다. 원래 이 음식점은 지난번 Y와 같이 가려고 알아둔 곳이었다. 그런데 그때 Y랑 안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무스가 참 맛있긴 한데 Y가 먹기에는 양이 적었겠다 싶었다. 갑자기 떠오른 Y에 카톡을 보내서 장마에 휩쓸려가진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장마 기간 동안 연수를 가서 정상적인(?) 생활패턴으로 지내고 있었다.


세상에는 손재주 많은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퇴근 후에 공방에 가서 이것저것 배워서 집에 가지고 와서 사용해 본 경험은 있다. 과거엔 강북에서 유명한 빵집에 가서 1일 체험을 한 경험도 있다. 8월에 가서 빵을 만들었는데 새벽부터 나와서 반죽하고 가장 더운 오후 1시에는 오븐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린 후 못생긴 빵의 결과물을 받으니 허무하기도 했다. 반나절을 고생해서 만든 빵이라 그런지 냄새도 맡기 싫었고 모양도 못난이 빵이었다. 그래서 항상 결론은 차라리 돈 벌어서 남이 만든 것 사서 먹거나 쓰자는 생각이다.


그래도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취미로 뭔가를 더 배워보고 싶다. 안국동에 도자기 핸드 페인팅하는 곳을 봐 뒀는데 언제 휴가 내서 도전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중동 음식점에 가서 먹은 아보카도 샐러드다. 후무스와 올리브 오일이 매우 맛있었다. 올리브 오일 어디 것 쓰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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