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293년에 출간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빈티지 콜렉숀

by 문간방 박씨

몇 년 전부터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해 왔다. 1년에 한두 번씩 해외에 나가서도 오래된 것들을 사모으기도 하지만, 내 경험상 가장 가치 있고 구하기 힘든 것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한국 빈티지나 골동품이었다.


요즘 꽂힌 것은 옛날 책이다. 오래된 책이라 물에 젖은 흔적도 있지만 상태가 양호하고, 글에 한자가 적어서 내가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늘 산 책은 여성이라면 관심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는 "미용법"에 관한 책이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1.jpg 인사동에서 만원에 구입한 "미용법" 책이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2.jpg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도 모든 여성은 미인이 되고 싶었나 보다. 매일 출근길이 힘들어서 화장도 안 하는 나 자신을 괜히 반성하게 되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3.jpg "연지"라는 단어를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세로로 읽는 법이 조금 어색하긴 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4.jpg 운동을 그림과 글로 설명해 뒀다. 과거나 지금이나 스트레칭이 가장 중요한 게야. "~읍니다"로 쓴 부분이 인상적이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5.jpg 식사를 할 때 연지가 씻겨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데... 점심 먹을 때 입술이 전부 지워지는 줄도 모르게 먹는 내가 괜히 부끄럽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6.jpg 선크림을 꾸준히 발라야 죽은깨가 안 생길 텐데... 지금은 죽은깨도 쉽게 없앨 수 있다는 걸 그 당시엔 상상도 못 했겠지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7.jpg 얼굴색과 탈모의 고민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8.jpg 향수의 선택은 현대 여성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니... 다음번 면세점에서는 향수를 구입 목록에 포함시켜야겠다.
KakaoTalk_20200127_215541340_09.jpg 500 환이면 지금의 돈으로 12,000원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1960년 11월 20일에 인쇄가 된 책이다. 이뻐지자는 책에 뜬금없이 "우리의 맹세"는 뭘까?


책 한 권 통틀어 얼굴색 관리 잘하고, 결혼식장 가서 예의 있게 식사하고 옷 갖춰 입고, 탈모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외적인 부분의 서술 끝에 뜬금없이 "우리의 맹세"는 뭘까? 사실 내가 이 책을 산 가장 큰 이유가 이 마지막 장 때문이다. 서기 4293년 즉 1960년 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 페이지라고 본다. 그 당시에는 "환"이라는 가격 단위를 사용했고,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라는 주입식 맹세가 참 인상 깊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옛날 책 한 권을 만원에 구입해서 소중한 역사 여행을 한 기분이다. 덕수궁 미술관에 가보면 이 시대의 책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내 눈에 우연히 띄어서 싼 값에 구입한 이 소중한 책을 잘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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