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리장의 수도였던 마을에서 구입한 그릇

중국 리장(2019.09.13)

by 문간방 박씨

질그릇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시안이었다. 진시황릉 옆 노점에서 이 그릇을 보고는 보통 질그릇이 아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질그릇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그릇을 햇빛 쪽으로 들었을 때 강한 햇살 한 줄기가 질그릇 사이의 조그마한 틈을 비췄고, 그 틈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나는 봤기 때문이다.


주인은 그냥 질그릇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는 진시황릉에서 이 질그릇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은 나 하나였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한국돈으로 만원밖에 안 불렀고 나는 못 이기는 척 7천 원으로 깎아서 사 왔다. 물론 이 그릇은 질그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리장에서 다시 그릇을 보게 됐다.


리장에서의 마지막 날, 2만 보쯤 걸었을 때였나 보다. 나는 과거 리장의 수도였던 오래된 마을과 근처 노점을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 수도였다고 해서 더 많은 역사적인 볼거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내가 마주한 것은 조악한 짝퉁과 깨진 사발들 뿐이었다. 게다가 이 마을의 절반 이상이 카페와 음식점으로 재개발되어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전통 가옥들도 몇 년 사이에는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리장의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시간 낭비했다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이었다. 그때 굳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오물 냄새가 나던 한 가게에서 낯익은 그릇을 봤다.


모녀가 노점에서 자리 하나씩 차지하며 팔고 있던 이 그릇을 나는 새삼 처음 보는 척하며 가격을 물었다. 딸은 가격을 부르기 전에 이 그릇이 일반 그릇이 아니라는 듯 한참 설명을 하고 나서 가격을 상당히 세게 불렀다. 하지만 나 역시 만만한 여행자가 아니다. 중국 방문은 리장까지 4번째였고 이런 일들은 중국에서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기에 거기서 부른 가격에서 반의 반의 반절을 더 깎았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던 여자 아이는 절대 그렇게 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고, 나도 미련 없다는 듯 '돌아서는 척'을 했다. (사실은 무슨 짓을 해서든 이 그릇들을 사려고 했다)


그 순간 옆 노점의 엄마가 딸에게 그냥 팔라는 듯 큰소리를 질렀고, 그 딸은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마지못해 그릇을 팔았다. 그릇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4개에 4만 원을 주고 샀으니, 시안보다는 비쌌다. 하지만, 리장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오늘이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냉큼 사 왔다.

KakaoTalk_20200201_144837147.jpg 땅에 묻혀 있었던 건지 그릇 주변에 단단한 흙이 고집스럽게 붙어 있었다. 욕조 안 뜨거운 물에 6시간을 담가놓고 물에 불려놨다.


KakaoTalk_20200201_144853849.jpg 6시간 뒤에 칫솔로 흙을 씻어낸 모습이다. 그릇에 본드를 바른 후 흙을 발랐나 싶을 정도로 흙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흙은 손톱으로 긁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이 오래돼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흙속에다 둔 건지 아니면 정말 땅 속에서 발굴한 건지는 아직 나에게 숙제다.

KakaoTalk_20200201_144915240.jpg 한국에 와서 엄마 찬스를 빌려 큰 냄비에 베이킹소다를 넣고 따뜻한 물에 불렸다. 그릇 밑부분에 한자로 4글자가 적혀있다.


KakaoTalk_20200201_144930044.jpg 그릇 내부에 화려한 꽃무늬와 태극무늬가 있다. 조각이 상당히 섬세했다.


시대와 재질도 미지수다. 옥인 줄 알았는데 돌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안에 태극무늬와 꽃무늬가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고 밑부분엔 낙관이 전부 찍혀 있다.

KakaoTalk_20200201_144945759.jpg 옥돌인지 모르겠지만 색깔과 무늬가 재각각이라 하나하나 개성이 있다
KakaoTalk_20200201_145000791.jpg 흙을 완벽하게 세척해 낼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

나는 골동품 수집가는 아니다. 어쩌다 보니 세상사 피해서 주말마다 박물관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관심사가 골동품으로 꽂힌 것뿐이다. 그 후로 월급에서 조금씩 돈을 모아서 눈에 띄는 것들을 사서 모으고 있다. 이런 취미가 나에게는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가 되더라. 하지만 이런 그릇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박물관에 가서 이와 비슷한 물건을 찾아보고 또 공부를 하게 된다.


앞으로 어디선가 예상치 못하게 또 다른 물건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약하면서...


우한 폐렴으로 난리인 지금 나 역시 언제 중국에 다시 가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중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마다 일본 다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유럽에 갔을 때처럼 인종차별이라던지, 자기들이 알아서 팁을 가져가는 날강도 같은 행패를 부리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느 동네 식당을 가도 잔돈까지 정확히 거슬러 줬고, 물건 하나를 사도 거짓으로 파는 경우는 없었다. 리장에서 좋은 기억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이 무탈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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