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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11. 2020

1년에 한 번 가보는 망원동 산책

드디어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에 가보다

S : 내일 오후 1시에 망원동 1번 출구에서 보자

Y : 네 좋아요!

S : 오늘 날씨 엄청 좋다. 지금 경복궁역 근처인데 좀 더 놀다가 집에 갈까 고민이네

Y : 신기하네요. 저도 지금 경복궁역 근처예요

S : 아 그래? 통인시장 뒤에 예쁜 카페 많은데 같이 갈래?

Y : ㅋㅋㅋ 전 집회 때문에 일하고 있어요


개천절보다는 시위 규모가 덜했던 한글날에도 Y는 도로 한복판에서 일을 했다.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고도 싶었지만 산행을 하고 난 직후라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어제 일찍 근무를 마치고 푹 쉬어서 컨디션이 좋다는 Y를 1시에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내가 늦었으니 이번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30분 일찍 나왔는데 12시 50분에 망원역에 겨우 도착했다.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이 있다는 망원역 1번 출구 주변을 돌아보다가 Y가 도착하기 전에 책방도 찾았다.


주택가 안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 쉽지 않은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이다


S : 오전에 유도하고 바로 온 거야?

Y : 아뇨, 옷이 좀 유도복 같죠?

S : 독특하네. 그래도 예뻐


Y는 무형문화재 하시는 분들이 입고 다니는 재킷 비슷한 것을 입고 등장했다. 표정과 목소리는 밝고 씩씩했지만 지난번보다 더 까무잡잡해진 피부와 목에 피부 트러블이 유독 많아진 게 눈에 띄었다. 아직도 여드름이 날 나이인가?


Y는 책방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했다.

   

26,000원짜리 편백나무 찜이다. 아주 건강한 맛이었지만 소고기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Y는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참 많이 했다. 예전보다 말수가 훨씬 많아졌고 목소리가 밝았다. 일 하면서 점점 더 대우가 좋아지고 있고 얼마 전에는 다 같이 축해해 주는 자리도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고 했다. 처음 일 시작할 땐 아무것도 모르던 '쭈구리' 같았다며 얼굴을 붉히던 Y는 지금도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일 얘기를 할 때는 식당 주인아저씨께서 우리 쪽을 자꾸 쳐다보셨다. 다행히 식당에는 손님이 다 빠져나가고 우리 둘 뿐이었다. 소고기에 버섯과 숙주나물을 야무지게 넣고 돌돌 말아서 맛있게 먹는 Y는 먹는 것 치고는 살이 안 쪘다. Y는 화장실에 간다고 하더니 밥값을 결제했다.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우리는 음료와 쿠키를 하나씩 시키고 1층에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올라가서 2층에서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쿠키는 각각 4천 원 대 가격이었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맛은 굉장히 좋았다. 커피맛은 내가 사 온 원두로 집에서 내려먹는 것이 훨씬 내 입맛에 맞았다


김소영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면서 커피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꼭 커피 맛을 보고 싶었다. 플랫화이트가 없어서 아이스라테를 시켰는데 맛은 집에서 내가 원하는 원두로 내 식대로 내려 먹는 게 훨씬 맛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이던 그림과 데코 책들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이니 나는 김소영 아나운서가 쓴 책을 골라서 읽었다. 책 읽은 소감은 오상진 아나운서 같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것??
2층 책방에서 남의 집이 보인다. 만약 내 집이라면 별로 안 좋을듯하다. 평소에 창문도 못 열어 놓겠네
내 주변에 흔치 않은 책 읽는 남자다. 도촬은 불법이라는데 도촬한 후 Y에게도 이 사진을 보내줬다. 마음에 든다고 했다
S : 넌 이미 공무원인데 왜 이 책 읽어?

Y : 방향성을 좀 잡아보고 싶어서요 

S : 대단하네...... 사실 난 지금도 미생 같은 회사 드라마나 글은 쳐다도 안 봐. 토할 거 같거든. 어때? 시사하는 바가 있어?

Y : 네, 제가 평소에 느꼈던 부분도 있고 좀 더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네요


김소영 아나운서 책방 2층에서 우리는 각각 책 한 권씩 읽고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했다. 아니, 이번에는 Y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Y는 승진 공부 대신 다른 부서(?) 면접을 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은 느낌이 매우 좋다고 했다. 각각의 점수도 전부 좋았다고 하니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바이다. 2차 면접 후 최종 결과가 12월 17일에 나온다고 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Y랑 1년 전 크리스마스 1주일 전인 12월 18일에 강남에서 밥을 먹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그땐 Y는 진짜 소년병 같고 '쭈구리'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코로나라는 핑계만 대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쭈구리'같은 모습이었다.


책방에서 음료와 물을 잔뜩 마시고 나와서 우리는 망리단길을 갔다.

Y는 원래 길을 잘 찾아서 유럽 여행 때도 전혀 겁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Y가 지도를 보며 안내하는 데로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들어가고 싶은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게 매우 재밌었다. 망원동다운 카페와 독립서점 그리고 플리마켓 등이 내 눈길을 끌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화장실이 급했다.


Y : 여기 건물 2층에 화장실 있대요. 열쇠 받아왔어요

S : 아, 남녀 공용이네......

Y : 먼저 들어가세요. 문 앞에 있을게요 


오래전 강남역 *번 출구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나보다 어린 여자가 살해된 사건 때문에 웬만하면 피하는 곳 중의 한 곳이 남녀 공용 화장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걱정 없이 볼 일을 보고 나왔다.


올해 초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북촌의 어느 한옥 카페 안에서 울기도 하고, 고민거리도 많아서 모성애를 자극하던 Y의 앳된 모습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Y가 화장실에 들어간 후에 찍은 망리단길의 모습.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네


망원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도 먹었다. 서서 떡볶이랑 어묵 먹는 게 1년에 1~2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떡볶이는 언제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요?'라고 물으며 Y는 뜨거운 떡볶이도 빠르게 먹었다
뜨끈한 어묵 국물과 어묵이 제일 맛있었다. 주인 할머니께서 지정석을 정해주셔서 거기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었네
양념장이 뭔가 참 푸짐했다


참 맛있게 먹었지만 주인 할머니께서 맨손으로 어묵을 끼우며 그 손으로 돈도 만지는 것을 보고 앞으로 길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번 더 했다. 집에 가기 전에 Y는 강릉에 놀러 갔다가 나랑 어울리는 것이 있어서 사 왔다며 선물을 줬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템이었지만 그래도 강릉까지 가서 내 생각을 하며 사 왔다는 그 마음이 매우 고마웠다. 


S :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잠은 잘 자니?

Y : 지금까지 딱 한번 있었어요. 그리고 잠은 머리만 대면 잘 자요

S : 다행이네. 난 신입 때 매일매일이 고비였는데 ㅋㅋㅋ 월급이 적다고는 생각 안 들어?

Y : 아뇨, 딱 하는 만큼 받는다고 생각해요


본인 월급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가까운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둘 다 초행길이었던 망리단길에서 알차게 구경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코로나가 망리단길만 피해가지는 않을 텐데 토요일 저녁의 망원동은 코로나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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