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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19. 2020

무악재역 주변 산책

서울에 이런 시골스러운 곳이 있다니!!!

무악재역 근처에 나름 방송을 몇 번 탄 아귀찜 파는 곳이 있다.

곧 마산에 내려갈 건데도 불구하고 아귀찜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토요일 점심에 아귀찜을 먹기로 했다.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까지는 자주 가도 독립문 이후로는 잘 가지 않게 된다. (독립문역 근처에도 딱히 놀만한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10년도 넘게 살면서 무악재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악재에 가기 전날 금요일 밤에 무악재에 대해서 검색해 봤다.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대학교 때 잠시 지냈던 무악재역 주변과 홍제동이 궁금했다. 어떤 곳인지 한번 구경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토요일에 3호선을 타고 무작정 무악재역으로 갔다.


경복궁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내렸고, 독립문에서 몇 사람 내렸다. 그리고 무악재역에서는 나랑 친구만 내렸다. 지하철 역 밖으로 나와보니 드라마 앨리스처럼 시간여행으로 20년 전 서울로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몇 번 출구를 고를 것도 없이 그냥 밖으로 나와서 좀 더 번화해 보이는 곳으로 걸어 내려왔다. 작은 산을 깎아서 아파트를 새로 짓고 있는 두 곳이 보였지만 아주아주 작은 단지로 보였다.


복도식 오래된 아파트와 아빠가 대학생 때 지나다녔다는 정말 처참한 모습의 아파트도 아직까지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경동시장 삘이 나는 인왕시장이 있었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시장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홍은 사거리까지 내려왔는데도 우리는 재미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다시 무악재역으로 걸어오다가 내가 찾아둔 아귀찜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귀찜은 정말 비쌌다. 안국동에 있는 마산 아귀찜 파는 곳에서 大자 가격이 여긴 小자 가격이었다. 왜 이렇게 비쌀까 싶었더니 小자를 시키면 6천 원 반찬을 한 개 주고 中자나 大자를 시키면 6천 원짜리 반찬 2개를 서비스로 더 준다는 거였다. 결국 아귀찜 가격에 반찬 가격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거였다. 우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아귀찜 대신 아귀탕 2인분을 먹기로 했다.


식당 안에는 인왕산에서 막 내려와서 이미 술판이 벌어진 테이블이 있었다. 가능한 한 그 테이블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귀탕 2인분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조금 있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 한 여자분이 바로 우리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할머니 : 아버지는 간장게장 드신다

며느리 : 어머니는요?

할머니 : 나는 황태찜

며느리 : 사장님, 황태찜 두 개랑 간장게장 하나 주세요


다른 테이블도 많은데 하필 우리 바로 옆 테이블로 온 것 빼고는 전혀 거슬릴 것이 없는 가족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외투를 벗는데 반절만 벗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할머니는 얼른 할아버지의 외투를 마저 벗겨드렸다.

어렸을 때나 보던 모습을 오래간만에 보니 한편으로는 정감도 있었다.


식사 중에는 대화를 삼가라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시던 할머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며느리에게 '돈'과 관련된 얘기를 했다. 슬쩍 보니 두 노부부의 차림새는 말끔했고 돈이 있어 보였다. 반면 마주 보고 있는 며느리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오래된 회색 코트를 입고 앉아있었다. 차림새를 보고 모든 걸 평가하지 말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보니 '보이는 게 전부'라는 표현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치과에 갔던 얘기를 했고 며느리도 덩달아서 본인이 치과에 가서 임플란트 4개를 했던 얘기를 했다. 


ㅉㅉㅉ 내가 아들한테 돈도 직업도 다 필요 없고 건강한 며느리 하나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이게 뭐냐? 그게 잇몸이냐? 


할머니는 며느리의 말을 다 듣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순간 드라마에서 며느리를 갈굴 때의 상황이 평화로운 토요일 점심에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카리스마 넘치던 할머니는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 며느리라면 이 기분 나쁜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1. 간장게장을 엎을까?

2. 아니야, 간장게장은 시아버지건데 간장게장은 건드리면 안 되겠다

3. 아니지, 본인 와이프가 며느리한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보고만 있는 것도 죄지?

4. 그럼 할머니 황태찜을 엎어야 하나?


주 5일 일하고 나서 토요일 점심에 이런 식으로 내 기분을 잡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깐 그 며느리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봤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이 며느리 되는 사람은 시어머니한테 그런 말 해봤자 좋은 소리 안 나올 것 알만한 나이인데 왜 굳이 쓸데없이 이빨에 돈 왕창 들어간 얘기를 하나?


뭐 남의 가정사야 내가 전부 아는 일이 아니니까 내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옆 테이블과 우리 테이블에 각각 밥이 나오면서 할머니네 가족은 조용해졌다.


아귀탕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귀가 엄청 많았다. 밥도 엄마가 해주는 새 밥처럼 맛있어서 정말 배부르게 먹고 왔다


얼마 전에 나에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잊지 못할 충고를 해 준 힌 친구가 있었다.


친구 : 현모양처 될 생각하지 말고 결혼해서도 돈 계속 벌어야 해. 무슨 일 생기면 쫓겨나는 건 열이면 열 전부 여자야

나 : 내가 잘못 안 하면 되지. 내가 왜 쫓겨나?

친구 : 잘못을 떠나서 경제권이 없는 여자가 무조건 나가게 돼 있더라. 남자가 나가는 쪽은 한 번도 못 봤어


엄마처럼 너무 없는 시댁을 만나도 문제지만 시댁에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눈으로 보고 온 하루였다. 밥 먹으면서 슬쩍 들어보니 며느리와 아들은 부모에게 상당 부분의 경제력을 의지하고 있었다. 한 푼도 주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에 꼬투리 잡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 정도(?)의 갈굼은 감수할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친구랑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운동도 꾸준히 배우려면 친구 말처럼 내 경제권은 꼭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무악재 고개를 넘어서 독립문과 사직터널을 지나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필라테스 선생님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렇게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 편히 운동해야지


약수터 손뼉 치면서 놀고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이 짐볼 위에서 균형 못 잡고 발레 바 잡고 뛴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모양처의 꿈에서 점점 멀어진다.

아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게 돈 많이 버는 것보다 우선이니 남편에 따라서 현모양처가 될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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