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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15. 2020

공무원인 사람과 공무원이 아닌 사람 사이에서

Y랑 K 이야기

S : 그래서, 일 하다가 화낸 적 있어? 내가 새로운 동네에 이사와서 겪어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대부분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 거 같아. 회사에서 겪는 사람들은 점잖은 사람들이었어

Y : 그 정도는 무난한 사람들이에요. 저 딱 한번 소리 지른 적 있어요

S : 네가? 이렇게 조용한 성격이?

Y : 아...... 제가 Sorita님 앞에서는 조용해 보일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엄청 활발한 성격이거든요. 고시원에 갔을 때 딱 한번 그 사람한테 화를 냈어요

S : 고시원...... 우리 회사에도 고시생활 8년 한 사람 있어. 나쁜 사람은 아닌데 뭔가 달라. 그렇지? 내가 그 사람한테 하루에 14시간씩 꼬박 공부한 네 얘기했어

Y : 아 아니에요 14시간. 13시간이에요


망원동에서 Y와 만났을 때 나는 K의 얘기를 꺼냈다.

Y는 K를 이해한다고 했다.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나다고 했다. 그 힘든 것을 K가 8년 동안 했으면 머리가 다 빠지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했다.


9월부터 자차로 출퇴근을 하겠다던 K는 출근 때마다 지하철에서 자주 마주쳤다.


S : 미안, 나 오늘 같이 출근 못해요. 8시 30분에 회의 있는데 늦어서 지금 뛰어가야해요

K : 아, 알겠습니다


사무실에 와서 체온도 못재고 손도 못 씻은 채로 나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의미 없는 회의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는 길에 나를 보며 머쓱하게 미소 짓는 K를 만났다.


K : 바쁘셨나봐요

S : 8시 30분 출근인데 8시 30분에 회의를 시작하라고 하니 더 빨리 출근하라는 건지 뭔지...... 힘드네요


망원동에서 Y를 만나고 난 후 오늘 출근길에 K를 또 만났다.

K는 인사를 하더니 안경 안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진짜 회의 때문에 먼저 서둘러서 간 건데 이 사람이 쓸데없이 나를 오해하는 게 싫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K는 한 달 전보다 살이 많이 쪄서 얼굴이 동글동글해져 있었다. 그동안의 근황도 궁금해서 나는 K와 같이 사무실로 걸어갔다.


S : 차 가지고 다닌다면서 왜 아직도 지하철 타요? 도로연수도 다 끝났잖아요

K : 이번 주 금요일에 차 끌고 와보려고 합니다

S : 요즘 일은 어때요? 많이 적응했어요?

K : 아...... 쉽지 않아요. 이쪽이 쉬운 분야가 아니에요.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요~


정부의 어느 기관에서 지식을 뽐내며 한국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사람이 고작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전표나 뒤적거리는 K가 안타까웠다.


S : 예전에 내가 13시간 공부해서 5개월 만에 합격한 친구 얘기했잖아요? 주말에 그 친구 만나서 K 씨 얘기했어요

K :......


처음으로 말수가 없어진 K를 보니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잘못 얘기했나 싶어서 K의 얼굴을 보니 K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S : 아니...... 고시원 얘기 나와서 우리 회사에도 고시 공부하던 사람 있다고 얘기했죠. 은근히 고시원에 사건 사고가 많더라고요

K : 그렇죠. 별 일이 다 있습니다. 특히 법 안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그 친구분 골치 무지하게 아플 겁니다. 그렇다고 친구분이 강하게 뭐 어쩌지도 못할 거예요. 이게 민원인 상대로 잘못 대응하다보면요~


나는 고작 '고시원' 단어 하나 꺼냈을 뿐, 얘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 상황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는 K를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혹시 K도 다른 Y들을 이런 식으로 괴롭힌 적이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본인은 그런 일 절대 없다고 하겠지만 내용이 Y가 얘기했던 것과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찜찜했다. K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내가 출입문에 안면 인식을 하려고 마스크를 벗을 때까지 우리 사무실 앞까지 따라와서는 주절주절 고시원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K도 마스크를 했지만 왠지 K의 침은 좀 더 강해서 마스크 밖으로 퍼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른 화두를 돌렸다.


S : 야근은 해요?

K : 네, 뭐 가끔 8시까지 합니다

S : 그래도 회사에서 밥 다 사주잖아요. 좋게 생각해요. 힘내요! 잘 되겠죠 뭐~

K : 잘 돼야죠......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회사와 부서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던 K는 이제는 업무의 서투름과 (숫자에 많이 약해 보였다. 전형적인 문과생 타입) 본인 부서에 대한 확신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반면, 업무를 하면서 처음부터 목표하고 있던 그 부서에 도전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Y의 모습은 11년 차 회사 생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도 배울 점이 참 많았다.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사람과 공무원이 된 사람 사이에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다. 하지만,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못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어찌 되었건 둘 다 신입으로서 즐겁게 회사 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딜 가나 내 몫으로 주어진 만큼 버텨내고, 이 사회에서 숨 쉬고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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