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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인천공항, 여기는 인천공항

코시국에 떠나는 것이 꽤 번잡스럽구나

by 문간방 박씨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살아온 나는 함부로 절망하지 않는 좋은 습관 하나가 있다.


이직을 위해 면접을 봤는데 최종에서 떨어지거나, 주재원으로의 파견이 며칠 앞두고 무산되었을 때도 나는 덤덤하려고 했다. 실제 아쉽게 떨어진 회사가 몇 년 뒤 좋지 않게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었고, 해외 파견이 무산되었을 때는 객사할 위험은 줄었다고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나의 태도는 되레 나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다.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었고, 나에게는 때려치우고 새롭게 뭔가를 할 큰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 한 사건이 나의 지루하고 평탄한 월급쟁이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전부 바뀌었고, 근무지와 생활 터전도 변했다. 매달 월급에서 떼이던 국민연금 앞자리 숫자도 바뀌었고, 월급이 들어오던 은행도 달라졌다.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예전보다는 재밌다는 걸 느꼈다. 1분 1초 시간 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고, 일을 하다 보면 금세 퇴근 시간이 지나있었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성과로 다가왔고, 이제는 불법을 자행한 대부업자들이 감히 나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내 삶의 드리프트는 시작되었다.




[Omar] [오후 10:07] Hola
[Sorita] [오후 10:08] Hola Omar
[OMAR] [오후 10:08] Can I ask for some stuff to bring me?
[OMAR] [오후 10:08] I will pay here
[Sorita] 오후 10:08] No hay problema
[OMAR] [오후 10:08] 사진
[OMAR] [오후 10:08] 6 of this long spoon
[OMAR] [오후 10:08] We don’t have in mexico.
[Sorita] 오후 10:08] really!!
[OMAR] [오후 10:08] Yes
[Sorita] 오후 10:08] for kids or adults?
[OMAR] [오후 10:09] Adults
[Sorita] 오후 10:09] Bien!


앞으로 중남미 전체에 대한 사업적인 계획과 그동안 나쁜 사람들이 얼마만큼 내 동료 지역에 꼴값을 떨었는지 확인을 하러 가는 길은 절대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멕시코로 떠나기 5일 전, 나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Omar는 나의 비장한 각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작 숟가락 6개를 가지고 오라는 부탁만 했다.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숟가락이 우선이지!


VIP가 되면 백화점에 갈 때마다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 이외에, 손가락 하나로 만원 이하의 작은 제품 하나를 무료배송으로 쉽게 받을 수 있다. 1월과 2월 내내 백화점에 갈 시간도 없어서 무료 커피도 다 날리고 있었는데 이럴 때 혜택이라도 써야지.


나는 그 자리에서 숟가락만 무료배송으로 내일 도착할 수 있도록 집으로 배달시켰다.


이렇게 나는 숟가락 10벌과 회사 이름이 새겨진 판촉물 그리고 한국 과자, O설록, 백자 그릇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의 오랜 동료들을 만나러 아에로멕시코를 타고 멕시코시티를 경유하여 GDL (과달라하라)로 향했다.


캐리어만 보면 정말 놀러가는 줄 알겠다. 현지 직원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절대 부족하게 가져가고 싶지는 않았다



북촌 내 단골 그릇가게인 광주yo에서 백자그릇 4개를 샀다. 한국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고 50%세일을 해서 부담없이 4개를 샀다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 출장이 참 쉽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탑승을 하기 위해서는 영문백신접종증명서 (Certificate of Immunization)가 필요했고, 출국하기 48시간 전에 PCR 검사를 받아서 음성이라는 영문 확인서도 받아야 했다.


작년만 해도 한국에 확진자가 이렇게까지 번질 줄 몰랐다. 이때 백신 맞을 때만 해도 상당히 고민이 많았고, 긴장을 했었는데 어차피 맞아야 할 일이었다


출국하기 이틀 전, 회사 근처 대학병원에 해외 출국용으로 제출하기 위한 PCR 검사를 79,900원을 내고 검사를 받았고, 그다음 날 1,000원을 내고 영문증명서를 받아올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재검이 떠서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출국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다른 병원에 가서 PCR 검사를 또 받아야 했다. 재검이면 양성일 확률이 높다고 대학병원 관계자들이 말씀하셨지만 두 번의 PCR 추가 검사에서 나는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니 절대 재검 문자를 받아도 쫄지 말자. 만약 회사에서 비용을 대주지 않았다면 절대 79,900원+22,000원+110,000원의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외는 나가지 않았을 거다.



[OMAR] [오전 10:42] Soritaaaaaa
[OMAR] [오전 10:42] Are
[OMAR] [오전 10:43] You
[OMAR] [오전 10:43] Ready
[OMAR] [오전 10:43]!!!!!!!!!
[Sorita] [오전 10:45] jajajaja
[Sorita] [오전 10:45] Manana, voy a hacer PCR test para salir a GDL!
[OMAR] [오전 10:51] Excelente
[OMAR] [오전 10:51] Mexico te pide?
[OMAR] [오전 10:51] Mexico no pide nada
[OMAR] [오전 10:51] Jaja
[OMAR] [오전 10:51] Quizá de Corea a mexico si


참고로 멕시코는 입국하는데 팬데믹 상황에서도 제한이 전혀 없다.

멕시코에 도착해서도 격리 없이 바로 현지인들을 만나고 관광을 할 수 있다. 2022년 3월 1일 기준 대한민국은 해외입국 대상자에게 7일 격리를 요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대비된다.


[Sorita] [오전 9:14] Como está covid 19 en bogota?
[Sorita] 오전 9:14] En corea, está incrementando.
[Manuel] [오전 9:14] Está bajando, pero igual hay que cuidarse mucho


콜롬비아 역시 PCR 검사나 콜롬비아 도착 후 격리 없이 바로 현지인과 만나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 매일 확진자수를 세고, 문자로 그날의 확진자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뿐인 것만 같다.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중남미처럼 자유롭게 출입국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병이 창궐해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많다.


그래도, 출장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니 조심해서 즐겁게 잘 다녀오겠다고 다짐했다.

하필 Y군이 꽃을 보내자마자 내가 출국을 하네. 이 꽃이 다 피고 질때쯤 한국에 오려나...
떠나기 전 투표도 하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 먹으며 왜 이걸 시켰나 후회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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