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한양릉 방문이야기
여름밤이면 오빠들 손을 꼭 잡고 관사 주변 시냇가에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주위엔 논과 밭뿐이고 우리가 부르던 '귀신의 집'이 시냇가 근처에 있었다. '귀신의 집'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창고였다. 창고는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는데 그 창고 뒤는 전부 울창한 숲이라서 그곳을 지나갈 때면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지나갔다.
아빠는 항상 시냇가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시냇가에 갔다 온 것을 아시는 날에는 아빠는 나에게 엄청 화를 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랑 같이 놀던 오빠들이 전부 학교에 가고 엄마도 집안일을 하시느라 나는 무척이나 심심했다. 혼자 관사에 있던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나는 딱 한번 호기심에 혼자 '귀신의 집'으로 향했다. '귀신의 집'에 들어가려면 시냇가 뒤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 짧은 내 두 다리로 시냇가를 폴짝 뛰어넘으려니 시냇가 정 중앙으로 퐁당 빠져서 신발에 물이 잔뜩 들어갔다. 한낮이었지만 '귀신의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조금 열려있는 철문을 조심스럽게 비집고 들어가 보니 그곳은 정말 귀신들이 사는 곳이 맞았다. 그 창고 안에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목각 인형이 여러 개 달린 화려한 상여와 관 여러 개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소리도 못 지르고 논밭을 가로질러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엉뚱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성인이 되어 여행을 하면서도 지하무덤을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지하무덤 (좀 더 공식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지하박물관")은 시안에 위치한 한양릉이다.
시안에 가면 모든 사람들은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러 간다.
나 역시 병마용을 둘러보고 20분 정도 셔틀버스를 타고 진시황릉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진시황릉보다 더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한양릉이다. 한양릉은 테라코타 5만여 점이 매장되어 있어서 시안까지 왔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이다. 시안 일대에 산재한 황제들의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발굴되어 ‘중국 최대의 지하 박물관’으로 불린다.
셴양 동쪽 외곽에 시안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도로를 내던 중에, 우연히 한나라 경제 (BC188~141년)와 황후의 무덤인 양릉을 발견했다. 부장갱에서 출토된 도용은 정말 신비스럽게 생겼으면서도 가까이에서 보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휴대폰을 바꾸기 전이라서 화질이 별로다. 지하 무덤 속이라서 내가 이 사진을 찍은 장소가 지하 5층 정도의 깊이였다.
한양릉에서 시안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정말 고행이었다. 구경하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막차를 타게 됐는데 막차에 중국인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줄이 선 것이 무색하게 무질서한 몸싸움이 벌어져서 나는 줄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한양릉 정도의 관광지에 시골버스 한 대로 운행되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나도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역주행을 하며 빠른 속도로 시안에 도착했다. 시골길과 공사판 길을 지나느라 그 당시에도 나는 혼자 KF94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입 안에는 모래가 한가득이었다.
호텔 바로 앞에서 내리는 버스는 물론 없었다. 어디라도 보이는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그 길도 역시 고행이었다. 거의 3시간 만에 호텔에 도착해서 나는 씻기도 전에 침대 위로 쓰러졌다.
시안은 어느 시골길만 가도 밭을 갈다가 나온 그릇을 돗자리에 깔고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나가다가 나도 여러 개 샀다. 시안은 워낙 역사적인 곳이라 한번 더 가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식당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중국인들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다. 너무 고생을 해서 시안에서 인생 최초의 몸무게도 찍었다.
우리나라의 몇 배가 넘는 강도 높은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1주일간 시안에 머무는 동안 내 수명은 20년은 짧아졌을 거다. 그렇지만 시안은 정말 인생에 한 번은 꼭 가볼만한 곳이다. 나는 한번 다녀왔으니 다신 안 가려고 한다. 다녀와서 감기 몸살로 1달을 앓아누웠다.
훈훈한 마무리를 지을 수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