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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다시 안 가고 싶었는데

러시아 여행기 끝

by 문간방 박씨

쓰다 보니 내 글을 보면 러시아에는 소매치기가 많고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몸소 체험해보니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내가 지금까지 방문했던 그 어떤 국가보다 치안이 좋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기차로 3시간 40분을 이동했다.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중앙역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잡범들도 많았다. 나는 피곤에 찌들어서 한 손에는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끌고 남은 한 손에는 모스크바에서 산 빈티지 접시들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호텔 간판과 엄마 그리고 내 지갑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중앙역에서 나와서 호텔로 이동하던 중 무심코 본 골목길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약에 취한 여행객을 2인 1조로 몸을 털고 있던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만약 약에 취한 사람이 여자였다면 단순히 돈만 뺏기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러시아에서의 긴장의 끈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해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후에야 조금 풀렸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장기간 여행을 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1달 코스의 웬만한 여행자들보다 훨씬 더 절박한 심정으로 계획을 짜고 최대한 많이 보고 온다고 생각한다. 어느 여행지에 가서도 유명한 카페에 앉아서 여유 있게 멍 때린 적이 없다. 그리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말도 안 되는 팁을 뜯겨가면서 밥을 먹었던 적도 없었다. 여행 책자에 나오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오랜 시간 웨이팅 끝에 중국인들과 뒤섞여서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시간이 돼서 근처 로컬 레스토랑에 가서 그곳 현지인들 속에서 밥을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런 곳에서는 팁을 강요당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북한 음식점에 가서 북한 종업원들이 서빙하는 음식을 먹었다는 글과 사진도 많이 봤다. 나도 러시아에서 맛보는 북한 음식이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인사동에서도 이북식 만둣국 정도는 7천 원에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심보가 고약한 나로서는 단돈 1원도 북한 경제에 도움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북한 음식점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러시아 현지 음식이 훨씬 싸고 맛있다!)


결론적으로 내 기억 속의 러시아는 치안이 썩 좋지는 않지만 예술과 음악이 풍부한 곳이다. 웬만한 미술관과 박물관에는 한국어 오디오도 있어서 (김성주 아나운서랑 손숙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천히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했던 게 참 좋았다. 그리고 살짝 외곽으로 빠지면 끝없이 펼쳐지던 대자연도 좋았다.


20160930_112112.jpg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박물관이다. 그릇들보다 왼쪽 구석에 있던 벽난로가 엄청 탐났다


20160930_122054.jpg 초가을에 방문한 러시아의 어느 정원이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좋았다


20160930_132921.jpg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인데 왠지 느낌이 싸해서 가까이 못 갔다. 과거에 인공호수 작업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던 곳이었다


20160930_132927.jpg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정원에는 소매치기도 없었다. 겨울이 되면 이 호수도 꽁꽁 얼겠지


20160930_135537.jpg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이다.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서 현지인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아서 찾아갔던 곳이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상트 페테르부르크 외곽에 위치해 있던 어느 성이었는데... 이 곳을 찾기 위해서 현지인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버스도 거꾸로 타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 버스비도 안 받고 목적지로 데려다 주신 기사분도 고마웠고, 말도 안 통하던 아주머니께서 이 성까지 길을 안내해 주신 것도 감사했다.


20160930_184318.jpg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을 모델로 만들어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피의 성당이다. 바로크와 비잔틴 양식이 결합된 동화 속 궁전 같은 성당이다. 내부의 모자이크화가 최고였다


다시는 러시아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러시아에 다시 가서 좀 더 차근차근히 보고 싶다.


올해는 해외에 나가지 말라고 위에서 압력 아닌 압력을 자꾸 넣고 있어서 9월 말 영국 비행기표는 취소할 계획이다......


앞으로 해외여행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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