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2018.09.23~10.04)
2013년 어느 겨울에 저녁 7시 무렵 사촌 언니는 광화문의 한 독립 극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극장만 가봤었는데 이 독립 극장은 극장 중에서도 가장 소규모였다. 언니랑 나란히 앉아서 봤던 그 영화관의 객석은 고작해야 30석 정도였다. 그때 봤던 영화의 제목은 "베스트 오퍼"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난 집에 가자마자 버킷리스트에 "프라하에 가서 시계탑 보고 오기"를 적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올드먼이 사랑하는 여자 클레어를 찾아서 프라하의 시계탑 건너편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녀를 무작정 기다린다. 그 장면은 지금까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궁금하다. 주인공 올드먼은 클레어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갔던 것일까 아니면 배신감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마 전자에 더 가까울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심리도 이제야 파악이 될까 말까인데 성별이 다른 남자의 심리를 어찌 알겠냐만은 보통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고 하니까 아마도 올드먼도 클레어를 평생 그리워할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영화 속에 나오는 각종 예술품과 경매 현장 그리고 스릴러 같은 반전과 음향을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정말 섬세하게 어느 한 장면도 버릴 것 없이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로부터 5년 후 나는 프라하에 갔다. 하지만 프라하에 갔을 때 보수공사 중이던 시계탑과 생각보다 너무 작은 규모의 시계탑 광장에 적잖은 실망을 했다. 올드먼이 클레어를 기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어느 카페 (영화 속에서는 세트였던 듯하다) 앞에서 사진만 찍고 나왔다.
프라하에서의 첫째 날 나는 트램을 타고 호텔로 오는 길에 방향을 잃었다. 호텔로 바로 가는 트램이 없어서 어느 정류장에서 꼭 갈아탔어야 했는데 내려야 할 역을 훌쩍 뛰어넘은 건지 아니면 더 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중간에서 내리고 보자 라는 생각으로 아무 역에서 내렸다. 그곳은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아주 한적한 프라하의 어느 거리였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점심 겸 저녁이나 챙겨 먹고 트램 역을 알아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저 멀리 "ANTIK"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발견했다. 길을 잃고 계획이 틀어진 순간부터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나는 뭔가 재밌는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으로 앤틱 가게로 향했다.
프라하는 유럽의 어느 국가와 비교했을 때 물가가 가장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다른 국가에서 사 오지 못했던 유럽의 빈티지들을 사 오려고 다른 여행에서보다 현금을 더 챙겨 왔다. 하지만, 정작 프라하에서 나는 일본에서 세계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유럽으로 수출된 여러 가지 빈티지들을 개당 2만 원 남짓으로 싼 가격으로 수집하게 됐다.
전도연이 대통령 딸이자 외교관 역으로 나왔던 옛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보고 나서도 프라하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프라하 사람들 중에 동양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는 몇몇 사람들의 안 좋았던 경험이 있어서 굳이 다시 가보고 싶진 않다. 하지만 만약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 시간이 없어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프라하의 어느 포도밭 사이를 거닐며 좀 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 돈이 모자라서 아쉽게 뒤돌아서서 두고 와야만 했던 도자기 몇 개도 더 사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