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에도 우정이 존재한다. 아마도?_보고타

항상 고마운 친구 이야기

by 문간방 박씨

5년 전 콜롬비아 보고타에 방문했을 때 나는 군사박물관에서 한 군인을 만났다.

나보다 더 4차원적인 성향이 있었던 Manuel은 Captain이었고 (어찌 된 일인지 5년 후인 지금도 Captain이다. 거긴 진급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콜롬비아 국방부에서 일을 하고 있다.


5년 전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는 퇴근 후 보고타 알도라도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공항 안에 있던 한 카페에서 우리는 명함을 주고받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카카오톡을 깔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콜롬비아를 휴가로 다시 갈 계획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그 역시 군인 신분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꼭 한국에 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한국으로의 여행은 그에게 너무 비싸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신 그는 내가 프라하에 있을 때나 러시아로 휴가를 갔을 때 그리고 일본에 있을 때도 항상 연락을 했고, 2021년 마지막 날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전쟁 당시 콜롬비아는 한국에 가장 늦게 도착했던 국가였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콜롬비아 군대가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는 한국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보면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콜롬비아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억해 주세요!)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그는 거의 매일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스페인어 연습에도 도움을 많이 준 고마운 친구다.


올해 초, 내가 콜롬비아로 출장 갈 수도 있다고 그에게 이야기했을 때 정작 그는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만약 나라면 카톡으로라도 환호성을 지르며 대환영을 했을 텐데 그의 반응은 내 예상외였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인천 공항에서 멕시코로 넘어왔을 때, 멕시코에서 일을 하는 동안 많은 메시지를 보내며 내 안부를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내가 보고타에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을 하자마자 바로 나에게 달려왔다.


보고타에서 묵었던 호텔은 내가 Manuel을 처음 만났던 군사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전속력으로 뛰어왔는지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은 채로 호텔 로비에서 날 보자마자 다소 격한 포옹으로 나에게 인사했다.


Sorita : 정말 오랜만이야. 넌 그대로구나!

Manuel : 너무 반갑다

Sorita : 난 어때? 변한 거 같아?

Manuel : 글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여


버스정류장에서 호텔까지의 거리가 도보로 20분인데 이 거리를 뛰어 왔으니 그는 내 앞에서 다소 격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콜롬비아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못 타기 때문에 나는 내 친구가 숨을 고르기를 마스크를 쓴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이 시간이 다소 어색한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너무 빠른 속도로 이야기했다.


Sorita : 너 스페인어가 너무 빨라. 천천히 이야기해. 아니면 영어로 하던가

Manuel : 알겠어


어느덧 보고타에서의 시간이 저녁 7시가 넘었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밥을 다 먹은 후 나는 그를 내 방으로 불러서 한국에서 준비해 간 선물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여자가 묵는 방이라 그런지 문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며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Sorita : 하하하 괜찮아. 들어와서 앉아

Manuel :......


보고타에서의 저녁 8시는 한국에서 한창 일할 시간이었다.

부재중인 보이스톡 몇 통이 이미 찍혀 있었고, 회사일과 관련하여 확인해 줄 사항이 몇 가지 있어서 나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한국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은 Manuel은 나보다 더 많은 드라마를 봤고, 현빈과 손예진이 결혼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전혀 몰랐다) 멀티태스킹이 전혀 안 되는 나는 옆에서 Manuel이 자꾸 떠드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Manuel에게 오늘은 이제 그만 헤어지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보고타는 고도가 높아서 구름이 눈 앞에 보인다. 여기서 오래 생활하면 폐활량이 좋아질 것 같다
이곳 주변으로 대통령궁과 정부기관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경비가 삼엄한 편이다. 그 말인즉슨 관광하기엔 다소 안전한 곳이라는 거다
중남미는 건물이 모두 크다. 이게 전부 한 건물이다. 조식은 역시 과일부터 시작했는데 마치 과수원에서 막 따온것 같았다. 5성급 호텔이면 과일은 손질해서 줄 법도 한데......
파파야랑 망고다. 요구르트에 파파야 잔뜩 넣고 먹으면 아침 식사로 최고인 듯!


Manuel은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가보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했던 곳들을 데려갔지만 사실 5년 전에 전부 내가 한 번씩 가 봤던 곳이었다.


콜롬비아의 전통 의상을 볼 수 있는 의류박물관인데, 옷보다는 건물 자체가 아늑하니 좋았다. 본모습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박물관으로 사용한 점이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듯 하다
하늘이 이렇게나 가까우면 천국도 더 가까울까? 콜롬비아의 빨간 지붕이 정말 그리웠다. 이곳을 다시 오게 될 줄 몰랐어


보고타의 구시가지에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몰려있다.

그다음 코스는 내 호텔 근처에 위치한 국립미술관이었다.


'국립'자가 붙은 것 치고는 미술관이 아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의 가치는 엄청나다.


국교가 가톨릭인만큼 성화가 많다. 그림도 멋지고 액자도 탐난다. 액자값도 엄청날듯 하다
예수님의 팔과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서 다소 어색하게 보이지만 나무에 이 정도 그림을 그렸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다
성모마리아 주변엔 항상 양과 천사들이 있다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달'은 항상 그림 하단에 있다. 정말 탐났던 그림 중 하나다
작품만 보면 이곳이 콜롬비아인지 유럽의 어느 미술관인지 구분이 안된다. 이 정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광객은 나랑 Manuel 두 사람 뿐이었다
비슷한 장식장을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구입하지 못했는데, 콜롬비아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다. 콜롬비아 시골 어딘가에서 분명 헐값에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다
비슷한 내용의 성화이지만 그림과 분위기는 전부 다르다. 작품 수준도 정말 높으니 꼭 방문해 보자. 입장료는 5천원도 안한다
실제로 보면 눈을 마주치는 것 같은데 사진으로 보니 그때 그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황금빛으로 칠한 제단과 오래된 유리병, 유리잔 그리고 스페인 귀족의 초상화다


과거 이미 방문했던 박물관과 미술관이었지만 Manuel의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재밌었다.

국립미술관 기념품샵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모자를 발견했는데 가격이 3만 원이었다. Manuel이 여긴 비싸고, 밖에서 사면 훨씬 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나왔는데 이 정도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 모자는 그 후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모자 때문에라도 보고타에 다시 돌아간다면 박물관에 한번 더 방문해야 할 판이다. 지난주 서촌에서 비슷한 모자를 발견했는데 세일해서 19만 원 달라고 하더라. Manuel은 여자가 사겠다는 것을 말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