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안부를 물으며_경남대학교 박물관

사심이 가득 담긴 박물관 소개 이야기

by 문간방 박씨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네 모습 속에 잠시 있고
네 마음 속에 잠시 네가
쉬었다 갈 뿐

더 많은 너는 이미 나의
마음 속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너!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한다
너한테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나태주 '그런 너'


누구보다 나를 귀하게 여겨 주고, 나를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한 때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했지만,

내가 점점 성인이 되어 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 뜸해졌고, 서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때는 헤어질 때마다 서로 아낌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와 나는 눈물을 보이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끔 만나는 서로의 모습을 통해,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세월의 유한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만큼은 내 곁에서 영원할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머뭇거림도 없이 훌쩍
네가 떠났을 때
나는 창밖의 안개가 너라고 생각했다
안개 속으로 보이는 산이 너라고 생각했고
안개 속에 추레히 서 있는 나무들이
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네가 떠나던 날의 안개를 더 사랑했고
안개 속의 산과 나무들을 더
사랑했는지 모른다

사람보다 안개를 더 사랑하고
안개 속의 산과 나무들을 더 못 잊어하다니!
어쩌면 나의 사랑은 네가 아니고
언제나 너의 배경이었는지도 모르는 일

왜 이렇게 나의 사랑은
끝까지 서툴기만 한 것이냐!

나태주 '서툰 이별'


그는 내 곁을 떠났고,

그가 살던 집도 팔려서, 나는 더 이상 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1년마다 한 번씩 찾아가는 과거의 그의 집 대문 앞에서 의미 없이 서성여 보기도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그가 지내던 응접실 창틀만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랠 뿐이다.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바랐다.

내가 사는 서울에 그를 기념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여러 곳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초라했고,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별 볼 일 없었다.


결국 나는 그의 고향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그를 위한 좋은 장소를 구할 수 있었고, 오히려 나보다 그 사람을 기억해 주는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내 마음은 놓였다.



경남대학교 박물관에는 할아버지께서 간직하시던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오랜 시간 박물관 문이 닫혀 있다가 4월에서야 재개관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전시 관람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당일 현장 입장 불가)


전화번호 : 055-249-2976, 2924


경남대학교 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 데라우치문고 전시실 그리고 기능유물특별전시실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경남대학교 소속 직원들이 직접 발굴한 유물도 있고, 경남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맨 오른쪽 가야토기의 컵이 정말 귀엽다


어느 박물관에서도 보지 못한 호랑이 뼈 조각이다. 당시 기우제를 위해 용과 가장 맞먹는 동물이었던 호랑이를 잡아서 연못에 제사를 지냈다. 그때의 호랑이뼈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데라우치문고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명사들의 편지와 그림, 궁중 관계 자료, 금석문 탁본 등 다양한 유물이 포함되며 저자 수도 천 명이 넘는다.


퇴계, 고경명, 이하응, 곽재우, 정철, 한석봉의 글과 김홍도의 귀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꼭 둘러보자


그리고 할아버지의 소장품은 바로 기증유물특별전시실에 있다.


차를 담던 통으로 추정된다. 각 면에 봉황과 용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강희신해중화당제'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강희 신해년은 1731년에 해당된다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할아버지가 소중히 아끼던 소장품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남일보에도 할아버지 전시에 대해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뚜껑이 있는 항아리 또는 붓을 헹구는 필세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채로 화초문 등을 장식했고, 항아리 어깨 양쪽에 강아지모양의 장식이 있다.


이 도자기 바닥에는 '대명선덕년제'라는 명문이 있는데, 이는 1426~1435년에 해당된다.


내가 방문했을 때 학예사 한 분이 작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시며 관람을 도와주셨다.

설명이 끝나고 내가 혼자 둘러보면서 천천히 시간을 갖는데 몇 분 뒤 다시 오더니 관장님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며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학예사는 내가 기증자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모른 척했다고 한다. (박물관 관람 시 15명부터 해설을 해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었다)


학교 졸업하고 교수님 방은 처음 가보는 거다. 관장님은 책을 정말 많이 가지고 계셨다


관장님께서 책이 나오면 가끔 집으로 몇 권 보내주시기도 했었다


관장님 방에 있던 수놓인 그림인데 도교사상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정말 따뜻하게 맞아 주셨던 관장님께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할아버지의 기증품은 사진과 도자기 등을 포함하여 대략 200 점이 경남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6년 전에는 특별전으로 할아버지 기증품만 전시가 되었는데, 현재는 코로나로 박물관 이용이 제한되면서 5월부터 다시 새롭게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약력을 좀 더 정리해서 보내주면 마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더 소개를 해 주시고, 소장품에 대해서도 더 연구를 해서 가치 있게 전시를 해주시겠다는 말씀이 감사했다. 관장님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나서 한 때 서울에 있는 유명 박물관에만 문을 두드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석사를 수료하신 경남대학교에 (석사 시험 날 일본 출장이 잡혀서 시험을 못 치르시고 수료로 남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기증유물이 훨씬 의미 있게 전시가 되길 바랄 뿐이다.


관장님께서 또 챙겨주신 책이다. 데라우치문고 전시실에 가면 교과서에서 배운 분들의 명필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수장고에나 있을 것 같은 수많은 토기들이 상설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학예사의 해설을 들으면 이해가 훨씬 빠르니 미리 예약해서 가자


할아버지의 의사를 물어본 적 없이 기증이 된 소장품들이기에 가끔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할아버지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할아버지 덕분에 맺은 경남대학교 박물관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이 마산에 대한 또 다른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할아버지 집에서 직접 보고 만져보던 소장품들을 박물관 전시실에서 볼 때마다 할아버지한테서 나던 특유한 냄새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나태주 '안부'


KakaoTalk_20220806_215936111.jpg 84년 마산예총에서 주최한 문학의 밤, 할아버지와 흰 옷을 입으신 문신 선생님이 함께 계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