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 이야기

깨진 고려청자는 덤

by 문간방 박씨


사장님! 얘 한국 것 맞죠?


나보다 연배가 몇 배는 훌쩍 뛰어넘는 도자기'님'께 나는 "얘, 이거, 저거"라는 호칭으로 사장님께 가격이나 출처를 묻는다.


내가 서울에서 믿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분이 인사동에 있다. 그분이 바로 사장님이다. 사장님 입장에서도 나는 믿는 손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장님의 가게는 아주 초라하다. 그래도 가게 이름이 있고 사장님은 명함도 있다. 가끔씩 사장님 핸드폰으로 '***회장님'이라는 이름으로 전화가 오는 걸 보면 큰 손 단골도 있는 듯하다. 그런 분들은 직접 와서 물건을 보지 않고 한 구역을 그냥 통째로 산다고 한다. 아주 드물게는 외국인들도 몇 개의 그릇들을 사간다. 그들은 한국 그릇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90% 이상이 일본과 중국 그릇이다.


어느덧 사장님과 알고 지낸 지도 2년이 되어 간다.

그러다 보니 가끔 가게 안에서 웃지 못할 광경을 보기도 한다. 들어온 손님을 내쫓기도 하고, 어떤 손님들은 물건을 몇 시간이나 서성거리면서 봐도 아무 제지도 하지 않는다. 사장님만의 손님을 보는 그 기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조선족이라 발음이 어눌해서 아마 나와 같이 근무하는 해외파 직원들은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들을 거라 짐작된다. 그래도 한국말을 잘하시고 한자를 잘 읽으시니 물건을 볼 때 궁금한 것은 바로 해석해 주셔서 답답한 것이 없다. 비록 귀는 잘 안 들리는 것 같지만 시력은 몽골인 뺨치게 좋아서 칩이나 스크래치가 난 것을 나보다 먼저 보시고 알려주신다. 종종 내가 고른 것보다 더 좋은 게 있다면서 먼저 골라 주시기도 한다.


사장님 손을 보면 그동안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전직 도굴꾼이셨나요?'라고 농담 삼아 묻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오래 장사를 해온 베테랑 장사꾼인 것 같지만 본인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고 가격도 낮게 부른다. 그리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고 해도 현금과 동일하게 받으신다. 그래서 이 곳에 방문할 때 항상 현금을 가져간다. 가끔 사장님이 부른 가격보다 내가 가진 현금이 적으면 사장님은 내가 가진 돈만 받아가신다.




연휴를 맞이하여 정말 오랜만에 인사동에 왔다.

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폐업을 했고 몇몇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중국인들이 없는 한적한 거리'가 됐다. 사장님 가게 근처에 가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잘 계시나 싶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슬쩍 보니 이미 손님 세 분이 도자기를 엄청나게 구입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동안 왜 안 왔냐는 말 대신 '그동안 잘 지냈죠?'라고 나를 슬쩍 보면서 수줍게 웃으셨다. 인사동에 사람이 없어서 사장님 생활도 어려워졌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장사에 큰 타격은 없는 듯 보였다. 거의 9개월 만에 와보니 가게에 눈에 띄는 것이 이것저것 있었다. 그중에서 켜켜이 쌓인 다완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다완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가게에서 보기 드문 한국 도자기였다.


조선시대 다완이다. 한국 다완은 일본 다완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선호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화려한 일본 다완보다는 순백의 한국 것이 훨씬 좋다. 구하기 어려워서 그동안 못 샀다
가마에 구울 때 조개껍질을 켜켜이 쌓았던 흔적이 있다. 장작가마로 구울 때 재가 틘 것이 그릇에 보이는데 전기가마로 굽는 요즘 다완에는 이것을 절대 볼 수 없다
지름 14cm로 꽤 크고 무게는 묵직했다. 보자마자 집에 모셔가고 싶었는데 사장님이 가격을 높게 부를까봐 조마조마했네
그 당시 가마에 구울 때의 모래가 다완 밑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다


사장님은 보통 일본 경매를 통해 물건을 들여오기 때문에 일본 사람이 소장하던 한국 도자기가 다시 한국으로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작년에 봤던 일본인이 소장하던 조선 백자는 가격이 비싸서 (그래도 엄청 사고 싶었다는......)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실사용할 수 있는 다완을 보니 이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Sorita : 사장님 얘 얼마예요?

사장님 : 걔는 좀 비싸. 조선시대 거예요. 내가 **만원에 사 와서 **만원에 줄 수 있어


장사꾼들은 보통 본인이 얼마에 사 왔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데 사장님은 항상 나에게 본인이 산 가격을 말씀하신다. 다행히 이 다완의 가격은 고작 내 하루 일당이었다. 광*요에서 장작가마에 구워서 파는 다완 가격의 거의 1/5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내가 가진 현금이 그 금액에서 3만 원이 모자랐다. 사장님은 3만 원을 깎아주셨다.


사장님이 신문지로 포장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아이가 눈에 띄었다.


Sorita : 사장님, 얘는 뭐예요?

사장님 : 그건 고려청자 같은 건데 깨진 거......

Sorita : 얘도 팔아요?

사장님 : 그냥 가져가요. 맨 밑바닥만 남은 건데 위에 항아리 같은 게 있었을 거야 (허공에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리시며)


밑바닥에 그림이 있는 걸로 봐서는 입이 넓은 도자기였을 것 같다. 주둥이가 좁다면 바닥에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집에서 작은 악세사리를 두는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다


이 깨진 파편은 얼마나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있었는지 모래가 시멘트처럼 도자기에 달라붙어서 세척을 다 하고도 이 모양이다. 정말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계산을 다 하고 나가는 길에 사장님께 백자에 대해 물었다.


Sorita : 조선백자는 일본에서 온 거예요?

사장님 : 아니,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서 소장품 정리된 거예요

Sorita : 왜 자식들이 사용 안 하고 이렇게 팔까요?

사장님 : 허허 물건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렇죠


생각해보면 내 윗대가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던 것들이 후손에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울적해지고 슬프다. 외할아버지만해도 그분의 많은 사진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한 친척 분이 '그 사진들 전부 일반쓰레기에 버렸다!'라고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씀을 하셔서 마음이 아팠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값진 한국 도자기를 내 기준의 적절한 가격으로 산 것은 처음이라서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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