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May 17. 2022

2분기 출장은 내가 가고 싶은 대로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이 대사에 꽂혀서

가끔은 궁금하다.


나와 아주 잠깐이라도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남자들은 내가 싫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해외 출장을 다니는 여자라서 싫었던 걸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남자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해외여행을 꿈꿨고, 내가 그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가 본 것에 대해 부러워했다. 나는 그들이 왜 머릿속으로만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최대한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욜로족이라며 카톡 프사에 별의별 문구를 다 적어놓더라도 아내가 될 사람은 명절에 해외로 휴가를 가서는 안되고,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 출장이 있으면 결격사유가 되었다. 모든 남자가 그러지 않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나의 직업과 부서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주 가끔은 그냥 처음부터 내 업무에 대해 말하지 않기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나 자신을 소개하고 이성을 만났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앞으로 언제 어디로 나갈 것인지 미리부터 염려를 했다. 이런 쓸데없는 불안 속에서 서로 불편한 감정은 쌓여갔다. 나는 내 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쓸데없이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해주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제 나는 2분기의 출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는 방글라데시 일정을 잡았으나, 공항에서부터 경찰이 삥을 뜯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진지하게 이곳을 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주변 사람들의 출장과 여행 후기까지 전부 들었다. 99%가 남자들이 방글라데시로 출장을 갔기 때문에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여자가 가면 남자들보다는 심하게 삥을 뜯기지 않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말라는 거였다. 하나의 팁으로 공항에서 경찰한테 지갑을 주면 그들이 알아서 적당량의 지폐를 챙겨 간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전부터 남의 돈으로 추접스럽게 생활한 자들과 대단한 전쟁이 진행 중인 나로서는 더 이상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사양한다. 만약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방글라 공항에서부터 영화 한 편을 찍고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그들이 경찰이라도 왜 너네가 지금까지 못살았고 앞으로도 못 살 것인지에 대한 엄청난 교훈을 던져주고 올지도 모른다. 다행히 방글라데시 사장님도 나의 걱정을 이해해 주셨고, 우리는 제3 국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국가는 내가 거래하는 또 다른 나라와 가까이 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또 다른 사장님께 연락을 했는데 흔쾌히 제3의 국가에서 보자는 회신이 왔다. 그 사장님은 내가 24살 때 입사한 순간부터 현재 회사로 옮겨오기까지 함께 일을 하면서 나의 성장기(?)를 봐 왔던 분이다. 내가 지금 이곳으로 옮긴 이유도 딱히 묻지 않고, 나와 새롭게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나를 만나기 위해 와 주시는 감사한 분이다. 이러니 내가 거래처 한 곳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을까? 뭐든 판촉물 하나라도 생기면 더 보내드리고, 필요한 도움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맞춰 드리면서 사업이 번창할 수 있게 앞으로도 더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


이렇게 남편도, 자식도 그리고 남자 친구도 없는 나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일과 나 자신만을 생각한 채 출국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버부킹에 대처하는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