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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n 06. 2022

2분기 출장은 UAE로

거래처 두 곳 만나서 돈 더 많이 벌어 올게요

'영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내가 24살 때 지하철에서 만났던 내 또래의 한 소년이 생각난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면서 자신감을 더 키우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 영업사원으로서 앞으로 ----일을 ---식으로 하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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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그 소년은 지하철 매 칸을 다니며 이런 식으로 본인의 포부를 외치고 있었다. 5호선 혼잡했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거의 없었다. 나 역시도 신입으로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처지에 그 친구가 짠해서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때는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영업사원을 해야 하나? 본인 성격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벌써 1N 년이 지난 일이니 그 소년도 지금쯤은 과장 이상의 직급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국내 영업과 해외 영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해외 영업도 지하철 안에서 소리 지르며 나 자신을 PR 할 수 있는 자신감과 포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목소리가 크고, 자신감이 있다고 제품이 절대 팔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고, 좋은지에 대한 경쟁력이다. 그리고 제품을 밀고 나가는 영업 사원에 대한 거래처의 신뢰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

내가 24살 때 만난 한 거래처는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존재였다.

한국보다 잘 살지도 않는 국가인데 물건 하나 팔기 위해서 까다로운 조건은 전부 맞춰야 했다. 게다가 사장은 성질도 더러우면서 메일도 단답식으로 기분 나쁘게 보냈다. 매 분기에 1번씩 발주를 받아서 그 건을 처리하는 과정은 나에게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차라리 주문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거래처만 없어져도 회사에서의 삶의 질은 올라갈 것 같았다. 그 국가와 일을 하면서 살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일단 이 거래처와 일을 시작하게 되면 칼퇴는 없었다.


하지만 이 거래처 사장님과 거래를 하면서 해외 영업의 전반적인 것을 익힐 수 있었다.

이 거래처의 업무가 끝나고 나면 다른 국가와 일하는 프로세스는 식은 죽 먹기였다. 3년만 경력을 쌓고 당장 이직하겠다던 나의 다짐은, 이 거래처의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한 때는 지긋지긋하고 당장에라도 버리고 싶었던 거래처였다. 하지만, 현재는 사사로운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포항에 큰 지진이 났을 때였나? 그때 수능까지 미뤄졌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다 보니 이 기사가 사장님 귀에까지 들어갔나 보다. 그분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날 이후 '여성의 날'이나 '근로자의 날'마다 매번 일 이야기가 아닌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나는 사장님께 한통 씩 받는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로 오면서 이 업체 역시 온전히 모셔오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2026년까지 품목 하나를 더 추가하여 서로 일을 하기로 합의를 했고, 나는 계약서 2부를 들고 그 사장님의 친필 사인을 받으러 떠난다.


2)

2년 이상 함께 일을 하다가 지금 회사로 옮겨오면서 참 힘들게 모셔온 거래처가 있다.

이 거래처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상공회의소에 한국의 법무법인 공증을 받은 계약서가 등록이 되어야 한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 거래처를 지금의 회사로 모셔오기 위해서 나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퇴근하는 길에 이 거래처에서 보이스톡이 오면 버스에서 내려서 거래처와 통화를 다 마친 후 다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근무 중에도 거래처 사장한테 수시로 연락이 오면 전부 답을 해주면서 '왜 나와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내가 보낸 계약서는 봤는지, 계약서 초안을 이렇게 수정했는데 확인했는지' 등등 하나하나 확인을 했다. 계약서 최종본이 완성되었을 땐 회사 경영진들에게 이 거래처와 계약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득하기 위한 미팅도 했다. (과거 회사에서 모시고 온 업체인만큼 시선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혹시라도 거래처 사장님이 변심할까 봐 최종본이 완성된 다음 날 바로 계약서를 들고 강남에 있는 나의 단골 법무법인 사무실로 달려갔다. 이렇게 우리는 2022년 1월부터 5년 계약을 했고, 사장님과 나는 올해 6월까지 정말 많은 액수의 매출을 올렸다. (환율이 높았던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어렵게 모시고 온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러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선물을 가지고 그분을 뵈러 떠난다




누구에게나 가보고 싶지 않은 국가가 한 두 곳쯤은 있을 거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북한 등등


나에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꿈꿔 본 적이 없는 국가가 하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다. 그런데 위 글에 나온 주인공 두 분의 국적이 바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다. 진정한 영업 사원이라면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내가 직접 찾아뵙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소년만큼의 용기와 포부는 절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사장님 두 분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대신 두바이로 모셔서 만나 뵙고자 이번 출장 일정을 잡았다.


이렇게 나는 에미레이트 항공 95만 원짜리 이코노미 석을 끊었고, 드디어 오늘 두바이로 떠난다.


내가 타게 될 항공기다. 날씨 좋은 한국을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이 무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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