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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r 27. 2022

오버부킹에 대처하는 자세

한국에 돌아왔어요!

아에로멕시코의 본사는 멕시코에 있으니, 멕시코에서 따지라는 '보고타'아에로멕시코 직원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나서 나는 멕시코 시티 제2 터미널에 있는 아에로멕시코 사무실에서 호텔과 식사권 바우처를 받았다.


하지만, 아에로멕시코의 오버부킹에 대처하는 시스템은 형편없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염두에 두자


1. 호텔 숙박과 식사권은 아에로멕시코 시스템상 1일이 최대이다.
멕시코시티-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주 2항 차였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에는 매일 있었다) 나는 멕시코시티에 5일을 더 머물러야 했다. 즉, 아에로멕시코에서 제공하는 호텔과 식사권을 얻기 위해서 매일 아침마다 호텔에서 제2 터미널에 있는 사무실까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최소 2시간을 길에서 소비했다

2. '보고타'아에로멕시코 직원은 멕시코에 가면 전부 해결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들은 일단 나를 멕시코로 보내버리고 책임을 넘길 궁리만 하고 있던 자들이다. 무조건 보고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결을 하고, 손해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
(나는 15,000원가량의 저녁식사 제공과 다음번 아에로멕시코 탑승 시 USD 250 할인받을 수 있는 티켓을 받았다. 나와 함께 오버부킹으로 탑승하지 못한 멕시코 할아버지는 순순히 물러났기 때문에 나와 함께 다음 날 새벽 1시 47분 비행기를 탑승할 때까지 아무런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3. 가능하다면 처음 만난 직원의 신상을 확인해서 이 사람과 해결을 볼 수 있도록 연락처를 받아두는 게 좋다.
멕시코에서 머물 호텔 바우처와 식사권을 얻기 위해서는 아에로멕시코 사무실에 가서 직원들에게 '너네가 오버부킹 한 이유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기 때문에 호텔과 식사 바우처를 받으러 왔다'는 것을 매일 설명해야 했다.  나는 내 일을 처음 상담해준 아저씨 사진을 찍어서 4일 동안 사무실에 방문하는 내내 그 아저씨를 만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항공사는 교대근무라서 아저씨를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4일 내내 새로운 직원들을 붙잡고 내 상황을 매번 설명하고 호텔과 식사 바우처를 받아야만 했다. 5일째 마지막 날 아저씨를 만나서 비행기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오버부킹 때문에 연결 편 항공기를 놓치고 멕시코에서 5일간 체류한 그날들이 출장을 온 후로 가장 말을 많이 한 고된 시간이었다.

4. 아에로멕시코 전산에 내 정보가 등록이 되어 있어서 호텔과 식사권을 자동으로 출력할 수 있다고 직원이 설명해줬지만, 그것은 또 다른 헛소리였다.
아에로멕시코 직원의 실수로 나는 하루에 두 번의 식사권을 받은 적도 있었다.  더 설명하기 귀찮아서 하루에 6번이나 식사할 수 있는 바우처를 그냥 받아서 나왔다

5. 오버부킹으로 인해서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내가 너네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와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 처음엔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까지 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1등석으로 내놓으라고 했다. 처음 사무실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비즈니스 좌석을 꼭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멕시코를 떠나기 하루 전 그 아저씨로부터 내가 받은 좌석은 프리미엄 이코노미였다


이왕 멕시코 시티에 남게 된 이상 나는 5년 전 멕시코 시티에 휴가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관광이나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슬퍼해봤자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초행길도 아니니 멕시코 시티가 두려울 것도 없었다. 나는 멕시코 시티의 악명 높은 지하철을 이용해서 관광을 다녔다. (다소 순서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아래 여행 일정은 멕시코시티를 떠나기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이다)


멕시코 지하철은 여성과 아이들만 따로 탈 수 있는 칸이 있다. 가끔 이 칸에 여성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나는 대부분 남자들하고 같은 칸에 타고 다녔다


멕시코 시티에 왔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서 어디를 둘러봐야 할지 고민이라면, 나는 무조건 '차풀테펙 성'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 차풀테펙 역에서 내려서 공원을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왼쪽 사진의 동상이 나온다. 여기서 10분만 더 걸어가면 차풀테펙 성 입구가 나오고 입장료 5천 원을 내야 한다


차풀테펙 성은 스페인 총독이 1785년에 바로크 풍의 성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 일을 맡았던 기술자가 사망하고 그 후 1806년 멕시코 시티에 이 건물이 팔리게 되었다. 멕시코 독립전쟁(1810~1821)이 일어나는 동안 이 성은 방치되어 있었지만, 1833년에 사관학교로 문을 열게 되었다. 1846~1848년에 걸친 멕시코와 미국 전쟁 동안 여섯 명의 생도들이 미국 해병대에 맞서서 이 성을 방어하고 전사했는데, 이 생도들의 행동을 기념하는 대리석 기념비가 바로 위 왼쪽 사진이다.


1862년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공하고, 2년 후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이 황후 카를로타와 막시밀리언 멕시코 황제로 등극하면서 이 성을 유럽 느낌의 신고전주의 풍으로 지었다 
건물만 본다면 멕시코가 아닌 오스트리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성 안에는 멕시코 독립전쟁이 묘사되어 있는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농민과 군인 그리고 옆에 화려한 귀족들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느낌이 든다


이 성 천장에는 멕시코 국기를 휘감고 자살하는 사관생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도 한 때 그림을 그렸지만, 자살하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만으로 어떻게 그릴까 싶다


미국에 맞서 싸운 사관생도의 그림 바로 밑에는 멕시코 국기가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차풀테펙 성에는 굉장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많으니 꼭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5년 전 여행으로 방문했던 떼오티우아칸에서 제물로 바쳐진 해골이 나왔다고 한다. 오른쪽 그림은 죄인의 목을 베어서 보란듯이 성 밖에 걸어두는 장면을 묘사했다. 인간이 제일 잔인해


차풀테펙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차풀테펙 공원과 사관생도의 기념비 그리고 차풀테펙 성이다. 정원이 정말 에쁘다
차풀테펙 성에서 꼭 봐야 할 스테인드 글라스다. 방 전체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꾸며져 있으니 날이 좋은 날 가면 방 안이 스테인드 글라스 빛으로 가득 찬 광경을 볼 수 있다
멕시코는 어딜 가나 분수가 있다. 차풀테펙을 대표하는 메뚜기가 분수대 가운데 있다. 참고로 차풀테펙 지하철 역에는 메뚜기 그림이 있다


3월 18일에 멕시코 시티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나는 5일 뒤 3월 23일 밤 11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아에로멕시코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도 아에로멕시코 직원은 22일까지의 호텔 바우처를 주려고 했지만, 23일 밤 11시 비행기이기 때문에 24일까지 묵을 수 있는 호텔 바우처를 받아서 (23일까지 지낼 수 있는 late check out도 하지 마라. 이것도 규정상 애매모호해서 따지기 까다롭다) 비행기 타기 전 호텔에서 씻고, 침대에서 푹 쉬다가 공항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비행기 티켓을 받을 때 비즈니스로 내놓으라고 강력 항의했으나, 비즈니스 좌석으로부터 2줄 떨어진 이코노미 석으로 받았다


정작 비행기를 타보니 비즈니스 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어렸을 때 삥을 뜯어본 경험이 있었다면 아에로멕시코 아저씨한테 강력 항의해서 비즈니스 좌석 받아서 편하게 누워 올 수 있었을 텐데,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더 강하게 항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내 옆에 2 좌석이 비어 있어서 15시간의 비행 동안 누워서 올 수 있었다.


아직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좌석이 많이 남는다.

아무래도 한국은 아직까지 코로나로 인한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도 반가웠고, 공항 입국 심사가 한국답게 초스피드인 것도 정말 자랑스러웠다. 멕시코랑 보고타에서는 기본 2시간 줄을 서 있었다.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 안 하고 몇 백 명 넘게 같이 몰려 있기 때문에 입국 심사하다가 코로나 걸리는 줄 알았다.


2022년 3월 23일 기준, 한국에 입국하면 24시간 내에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보건소에 갈 때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가져가자.


보건소에 해외 입국자라고 이야기하면 PCR 검사를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보건소 직원이 내 여권에서 멕시코 출국 도장을 찾지 못해서 (멕시코는 출국 도장을 따로 찍지 않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는 비행기 티켓을 직원에게 확인받은 후에야 PCR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보건소에 방문할 때 반드시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가져가야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을 때 아에로멕시코 직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아에로멕시코 직원들은 고객이 짐을 찾는 동안 문제가 생기는 것은 없는지 미리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보고타에서 파손된 수화물을 바로 신고 접수할 수 있었고, 다음 날 바로 내가 골랐던 캐리어를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에로멕시코는 'trash' 항공사라고 욕을 써 놨었지만, '한국'의 아에로멕시코 직원들의 수하물 파손 처리 방식이나 업무는 수준급이었다.


[한국 아에로멕시코 지점장] 고객님,
                                      아까 말씀 나눴던 아에로멕시코 최** 지점장입니다 
                                      저희 직원 듀티 폰은 사진을 잘 확인할 수가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이쪽으로 보고타 탑승권 한번 더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
[Sorita] 사진
[한국 아에로멕시코 지점장] 19일에 보고타에서 멕시코로 오셨고 23일까지 멕시코시티에서 호텔 체                                        류하시다가 오셨군요?
[Sorita] 맞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23일이 가장 빠른 거라 국제미아 신세였지요ㅜㅜ PCR검                            사비도 멕시코에 있는 아에로멕시코에 청구하려 했으나 규정에 없다며 거절하더라고요 
[한국 아에로멕시코 지점장] 네 ㅠㅠ 정말 많은 불편 겪으셨네요... 저희는 수하물 잘 배송드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하필 캐리어 브랜드 이름이 엘도라도다 (보고타 공항 이름이 엘도라도 공항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섬뜻해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새 캐리어 받으니 기분은 조금 풀렸다


'보고타'아에로멕시코에서 오버부킹 하면서 보고타 직원들과 엄청난 마찰이 있었고, 회사에 5일간 결근을 하면서 멕시코 시티에서 호텔과 식사 바우처를 얻으며 혼자 체류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시스템만 운운하며 매일매일 호텔과 식사 바우처를 받으러 고객이 직접 공항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수고를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아에로멕시코 본사에 영어로 정식 클레임을 걸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수준 이하였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아에로멕시코는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 오버부킹을 했으나, 나 같은 고객을 위해 그들이 호텔비를 지불한 금액은 1일 20만 원이다. 즉, 내가 5일을 호텔에서 숙박했기 때문에 아에로멕시코에서는 나에게 들어간 비용이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사소한 것을 아끼려다가 더 큰 비용이 지출이 된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아에로멕시코 본사에 글을 올렸을 때 돌아온 답변을 토대로 느낀 점은, 앞으로도 이들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답변에 대한 만족도를 체크하라는 팝업창에 'NOT SATISFIED'를 연달아서 누른 후 나는 아에로멕시코 창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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