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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부킹의 피해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아에로멕시코

너네 때문에 연결 편 비행기 놓쳤는데 매번 해명은 내가 해야 하네

by 문간방 박씨

멕시코 시티 제2 터미널에 위치한 아에로멕시코 사무실로 들어갔다.

너무 피곤하고, 3시간 넘게 물도 못 마셨지만 나는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워서 아에로멕시코로 직진했다. 보고타 아에로멕시코 직원들의 오버부킹 피해로 한순간에 멕시코에서 미아가 된 내 신세가 황당하고 화가 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당장 법인카드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 편은 주 2회 있다. (예전에는 매일 운항을 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는 절대 회사 비용으로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보고타의 아에로멕시코 직원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니 나 같은 사람도 한순간에 미아가 되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나 어린 친구들이 겪는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싶었다. 누군가는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보고타 아에로멕시코에서의 오버부킹 상황과, 그들이 비행기 탑승구 문을 닫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던 못생긴 얼굴들과 그리고 내 탓이라고 둘러대던 목소리가 아직까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절대 용서 못한다.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나는 이미 태평양을 거의 건너서 한국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미 일은 엎질러졌고, 당장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니 나는 멕시코 입국 심사를 2시간 동안 기다리며 아에로멕시코 본사 직원들과 쇼부를 봐야 할 사항들을 1부터 10까지 적었다.


아에로멕시코 체크인 카운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에로멕시코 직원이 어떤 용무로 왔냐는 말에 대답을 해야 했다. 나는 일단 질문을 듣자마자 또 화가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너네가 오버부킹 해서 내가 연결 편 비행기를 놓쳤고, 지금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내일 출근도 못하게 생겼다. 가장 최선의 방안을 아에로멕시코와 협상하기 위해 왔다'라고 하자 직원은 아무 말 안 하고 바로 저 사람을 만나 보라고 했다.


'오버부킹'이라는 단어는 이미 나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하지만 나는 매니저를 만나서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런데 의외로 굉장히 말귀가 통하는 아저씨였다. 영어도 수준급이었고, 서비스하는 자세가 한국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보고타 아에로멕시코 직원들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보여줬고, 아저씨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의 가장 빠른 비행편과 그동안 머물러 있을 호텔과 식사를 위해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에로멕시코에서 제공한 오버부킹에 대한 처리는 아래와 같다.


1. 아에로멕시코와 연계된 호텔 제공

2. 호텔에서 먹을 수 있는 3끼 식사권 제공

3. 호텔과 공항을 이동할 수 있는 택시 왕복권 제공

4.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부킹


기타 PCR 비용이나 멕시코에서 지내면서 들어가는 비용은 절대 처리해 주지 않는다.

'왜 내가 너네 때문에 PCR을 또 받아야 하냐. 현금이라도 좋고, 너랑 같이 가서 내가 PCR 받을 테니 네가 돈만 내라'라고 이야기했지만 PCR 비용에 대한 처리 근거는 없기 때문에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렇듯, 아에로멕시코는 자기들이 편한 대로 오버부킹을 한 후, 승객들이 피해를 입으면 본인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서만 사무적으로 처리한다. 앞으로 소생 가능성이 불가능한 항공사라는 거다.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도 있다고 해서 내 캐리어 2개랑 함께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나 다시 돌아왔어! 멕시코 시티야.


아에로멕시코와 연계된 호텔은 낡았다고 들어서 아에로멕시코 담당자한테 내가 추가 비용을 낼 테니 제2 터미널에 있는 내가 몇 번 묵었던 5성급 **호텔로 옮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안된다고 했다. 이렇듯 모든 불편은 고객의 몫이다.


호텔은 한 20년 된 오래된 건물이었다. 생각보다는 방이 컸지만 욕조는 금이 사정없이 가 있고 타일도 떨어져 나가서 반신욕하는데 찝찝했다
콘센트나 세면대를 보면 빈티지함이 보인다. 어쩌다가 이 호텔에 왔나 웃음이 났다
20년 전에는 그래도 고급 호텔이었겠거니 싶다. 아에로멕시코 조종사들도 이 호텔에 묵더라


거의 12시간 만에 첫 식사를 했다.

목이 너무 말라서 씻지도 않고 바로 식당에 내려와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돌잔치 부페 느낌이 났다. 식기는 제대로 세척이 안돼서 숟가락을 몇 번이나 바꿨다
과일하고 야채를 많이 먹었다. 나는 격리도 면제된 한국의 떳떳한 기업인인데 어쩌자고 여기서 미아가 됐을까
한국에서는 먹기 힘든 오디랑 망고를 잔뜩 가져다 먹었다 인스턴트 음식이 많은 식당이었다


씻고 나서 노트북을 켜서 일 좀 하다가 나도 모르게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생각보다는 침구가 좋아서 눕자마자 베개에 파묻혀서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창밖 뷰도 형편없다. 책상에 앉아서 일할 때마다 밖에 비행기 소리가 엄청나다


오버부킹의 피해를 당하면 절대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이미 아에로멕시코 본사에 컴플레인 글을 올렸지만 답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Sorita] [오전 10:24] 아에로멕시코만 아녔음 제가 삼실 있어야 하는데ㅜㅜ
[Sorita] [오전 10:24] 진짜 그지 같은 것들이었어요. 카톡으로 말 다 못합니다ㅜㅜ
[허 이사님] [오전 10:25] 여성이어서 그 정도였겠죠
[허 이사님] [오전 10:25] 남성이었으면 발가벗겨서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Sorita] [오전 10:26] 헉 그런가요? ㅋㅋㅋㅋㅋㅋㅋ
[허 이사님] [오전 10:26] 솔직히 그렇게 느껴집니다
[허 이사님] [오전 10:26] 그나마 차장님이어서 그 정도였을 거라고
[허 이사님] [오전 10:26] 남미 놈들 남녀차별 겁나 세거든요
[허 이사님] [오전 10:26] 특히 외국인한테
[허 이사님] [오전 10:27] 저였으면 아마 그건 니 사정이고 꺼져 그랬을 듯


회사에서 이해해 주신 덕분에 나는 멕시코 시티에서 일을 하면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나올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인생이 너무도 예측 불가능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그래도 즐겁고 활기차게 멕시코 시티에서 오늘도 생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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