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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11. 2022

원수는 방글라데시에서 만난다

사람의 인연은 스스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나는 방콕에서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비만 방글라데시 항공' 게이트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방글라데시에 왔다.


서울에서도 군중 속에 숨어버리면 마주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올해 한국에서도 단 한 번 마주칠 일이 없었던 사람들을 방콕의 D4 게이트, 비만 방글라데시 항공 탑승구 앞에서 정면으로 마주칠 확률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필 많은 날들 중에서 그날, 그 시간 대 같은 비행기를 탈 확률은 더더욱 얼마나 되는 건가? 이게 가능하기라도 한 일일까?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눈앞에서 보자마자 순간 속으로 생각나는 온갖 욕은 다 퍼붓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저주했다.


비만 방글라데시 항공 게이트 앞에서 정면으로 나의 전 상사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서로 놀랐다.

그분은 머리에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나의 전 동료였던 그 역시 작년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여기서 피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무섭더라. 나는 혼자였고, 이곳은 방콕이고 우리는 10분 뒤 같은 비행기를 탈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 머릿속에 회장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상황을 회사에 전달했다. 이 질긴 인연을 정말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일까?


참으로 신기하다.

내가 나의 전 상사에게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 나왔던 그 날짜로부터 하루도 모자라거나 더함이 없이 정확히 10개월 됐다. 우리는 이렇게 섞일 수 없는 위치에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 이야기는 불과 몇 시간 뒤 내가 2022년 나의 전부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을 만나기 직전의 일들이다.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서 타이항공을 탔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닭가슴살 샌드위치랑 물 2병을 사서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먹었다.


타이 항공 기내식은 정말 맛없다. 그래도 닭고기랑 야채는 전부 챙겨 먹었다. 생수병으로 물을 주니까 좋더라


개인적으로 타이 항공처럼 화장실 정리가 안되어 있고, 비품이 비어있는 곳은 처음 봤다.

다시는 이용하고 싶지 않은 항공사이지만, 방글라데시 환승하기에는 가장 시간대가 맞는 비행기라 앞으로 몇 번 더 이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방콕에 도착 직전에 쿠키랑 물 한병을 더 줬다. 쿠키가 밥보다 맛있었다. 방콕에 도착해서 다시 입국장으로 이동했다


참고로 내가 이용하는 항공사가 '타이항공-비만 방글라데시 항공'이다.

이럴 경우 비행기 티켓을 한국에서 한 번에 못 받기 때문에 (항공사가 달라서) 반드시 방콕에서 입국 도장을 받고 다시 입국장 4층으로 올라가서 비행기 표를 받고 방콕 출국 수속을 해야 한다. 나는 환승 시간이 3시간이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나름 서둘러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줄이 엄청 길었다. 탑승 시간까지 2시간도 안 남았는데 아직 내 차례가 오려면 멀었다. 뒤에 긴 줄이 어마어마하다


방콕 공항은 정말 크기 때문에 반드시 게이트 위치까지 가 본 다음에 쇼핑할 것을 추천한다.

방콕 공항에서 부랴부랴 게이트로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을 지난달에도 보고 이번 달에도 또 봤다.


나도 시간 여유가 많이 없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공항 사진을 찍었다. 비만방글라데시 항공 게이트까지 오니까 이제 안심이 됐다


이렇게 나는 소송을 건 사람들과 함께 한 비행기에 탔다.

이 얼마나 불편한 일일까? 그들이 왜 방글라데시에 왔는지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입맛도 없는데 비행기 음식도 별로더라. 특이한 향도 있고 닭고기가 너무 퍽퍽했다. 참고로 무슬림 국가라 돼지고기는 없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입국장에서 먼저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선 나의 전 상사는 멀리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사람들을 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만약 그분이 나에게 말을 건다면 나는 정중하게 인사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더라. 우리는 그냥 모른 척 서로 지나치며 각자 갈 길을 갔다.


방글라데시 공항 문 밖 풍경이다. 서울 남부터미널보다 훨씬 시설이 못하다. 거래처 사장 만나서 호텔까지 무사히 왔는데 또 침대가 2개였다


내 몸에 딱 맞는 욕조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입욕제를 잔뜩 풀어서 반신욕을 했다. 피로 푸는 데는 반신욕이 진짜 최고임


웰컴 과일도 줬지만 입맛이 없었다. 빈티지 체중계가 있길래 한번 재봤네


방글라데시의 첫 시작 전부터 누아르 영화였다.

설마 방글라데시를 떠나는 그날도 같은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니겠지? 자금까지 꿈에서만 몇 번 봤던 그들을 실제로 타국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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