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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26. 2022

급 출장 갑니다_인도네시아

이번 출장부터 2인 1조로 출동합니다

오늘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난다.


인도네시아라......

인도네시아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한 회사가 있다.


소사원이었을 때 나의 가장 큰 꿈은 옆에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다.

3년 이상을 버텨서 경력직으로 더 크고 연봉이 높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내 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3년은 버텨야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정말 많은 도전을 통해 이전 회사를 탈출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그렇다고 홧김에 사표를 내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공부를 더 하기에는 두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수많은 도전을 통해 내가 10의 노력을 해도 1도 안될 가능성이 99.9999%이고, 남들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운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운이라는 것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같다는 전제 하에 인생을 살아왔다. 이직하면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 같은 몇몇 회사에도 최종까지 가서 탈락을 하거나, 최종 합격을 하고 나서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부서가 없어진 적도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나에게 후자와 같은 곳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울로 7017'의 어느 길 한가운데 서면 저 멀리 한 회사가 보인다.

몇 년 전 나는 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서류-필기시험-AI 면접-1차 면접-2차 면접-3차 면접을 봤다. 총 4번의 휴가를 내고 응시할 정도로 이 회사의 가치는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업무보다 일은 적으면서 연봉은 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할머니도 들으면 바로 아는 회사였다, 최종 면접 후 발표날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내가 지원한 부서만 '보류'의 메시지가 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 연구원 1인도 그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회사 인사팀에 전화를 했다. 인사팀 직원은 법인 설립 결정에 지연이 있어서 당장 답을 줄 수 없으나, 내가 된 건 확실하니 다른 회사에 가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인도네시아 법인'에 지원을 했던 것이었고, 한국을 아예 떠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4개월째 내가 그 회사 인사팀에 다시 연락을 했다. 그제야 인사팀 직원은 법인 설립이 취소가 되었으니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서울로 7017'에서 그 회사를 바라볼 때마다 나를 이런 식으로 취급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회사 광고를 보면 짜증이 났고, 그 회사 제품을 실물로 보는 것 자체는 트라우마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다시 그 회사로 이직할 수 있을까 궁리도 많이 했다. 나는 원래 자존심 같은 게 많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회사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트라우마를 뛰어넘으면 된다. 그때 그 회사에서 제시했던 연봉보다 지금 더 많이 받으면 되는 거고, 많은 기회를 잡고 나에게 더 맞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거의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때 그 회사에 합격을 해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면 어땠을까? 코시국 3년 동안 해외 법인을 철수한 한국 회사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게다가 여기에다가 쓸 수 없을 정도로 바로잡았어야 할 수많은 일들 역시 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회장의 지시로 급하게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항공권을 겨우 구해서 (1주일 전에 지시가 떨어짐) 자카르타로 떠난다. 인도네시아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큰 미션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나에게 물을 먹였던 그 회사는 모 경영진 가족의 일로 뉴스에 몇 차례 떡칠을 했고 기업 이미지 자체는 현 회사보다도 더 아래에 다. 이건 내가 감히 손을 댈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입에 올리는 것조차 추접스러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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